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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선통제 푸이(溥儀)에 대한 책이다. 푸이의 영국인 스승이었던 레지널드 존스턴이 1898년부터 1931년까지 청나라의 몰락 과정과 만주국이 출현하기 직전까지를 파노라마처럼 그리고 있다. 그야말로 흥미진진해서 한번 손에 잡으면 도저히 놓을 수 없을 정도다.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커서 영국 ‘케임브리지 중국사’의 참고문헌에 올라 있으며, 유럽과 중국에선 지금까지도 판을 달리하며 출간되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근대사를 한눈에 꿰뚫게 한다.

푸이. 이 이름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 지식의 대부분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얻은 것일 게다. 하지만 책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관료와 학자의 경력을 지닌 저자는 영국인 특유의 꼼꼼함으로 청 제국 말기의 격동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영화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풍부한 역사적 사실들로 가득차 있다. 게다가 저자의 문학적 감수성과 필력은 이 역사서를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 놓는다.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 또한 넓고 깊어 ‘정말 영국인 맞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청 황실에 암운이 드리워지고는 있지만 아직 태양이 내리쬐던 때(1898~1911), 자금성의 황혼기(1912~1924) 그리고 황혼 뒤에 찾아온 ‘폭풍의 밤’ 시기(1925~1931)다. 첫 시기는 캉유웨이(康有爲)의 개혁안을 받아들인 광서제(푸이의 큰아버지)가 백일유신을 추진하던 때부터 서태후의 재집권과 신해혁명의 발발까지다.

‘자금성의 황혼기’는 공화국과 청 황실의 타협으로 푸이가 퇴위한 황제로서 자금성에서 거주하던 시기, 1924년 11월 펑위샹(馮玉祥)에 의해 자금성에서 추방될 때까지의 기간이다. 이 책의 핵심 부분으로 책 제목 또한 여기에서 나왔다. 공화국이 수립된 나라의 수도(베이징)에 정무를 책임진 대총통과 혁명으로 붕괴된 군주국의 황제가 13년 동안이나 ‘불편한 동거’를 하는 미묘한 상황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책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군주제와 푸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다. (입헌)군주제론자인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청 황실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와 함께 이와는 반대로 흘러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놓지 않는다. 이 같은 시각은 책의 등장인물에 대한 수사에서도 여전하다.

예를 들어,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孫文)에 대해 ‘손일선(쑨원의 호)과 같은 완고한 소수의 배만(排滿)파’ 등으로 묘사한다. 이에 반해 청 황실은 이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중원을 평화롭고 자유롭게 다스렸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혁명(1911년의 신해혁명) 이전에는 외국인 방문자나 여행자가 중국인이 세계의 어떤 국민보다도 많은 개인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언제나 놀랐다”며 “이것은 혁명가인 손일선 본인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푸이에 대한 시각은 더욱 지극하다. 푸이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자금성 밖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 또한 컸다는 것. 신문과 각종 정보를 통해 중국의 현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유럽과 일본 등 해외 각국의 움직임 또한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제나 침착하고 의연함을 잃지 않았으며, 급변하는 사태에 대해 정확하게 대처했다고 부언한다. 특히 소년 시절의 푸이에 대한 저자의 판단은 눈길을 끈다.

“황제(푸이)는 민첩하고 총명한 두뇌를 가졌지만, 성격에는 진지한 면뿐 아니라 경박한 면도 있었다. 처음에 나는 황제가 경솔한 것은 나이가 어려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며, 성장하면서 철없는 행동은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황제의 천성에는 끊임없이 무언가 분열하는 것처럼 두 개의 인격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다. 황제가 소년기를 벗어나자 나는 허심탄회하게 이 문제에 대해 황제와 자주 대화를 나눴다….”

저자의 극히 보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책은 역사의 진실에 가까이 가 닿는다. 아무리 애정어린 시선으로 황실을 바라보지만, 역사의 승자는 공화파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푸이의 ‘복벽’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다. 명실상부한 황제의 지위를 되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푸이 개인에 대한 애정 차원이 아니라 중국인에게는 군주제가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에서 펼쳐놓은 역사적 사실의 집합은 몰락해가는 청나라의 최후를 가리키고 있다.

이는 마치 아르놀트 하우저가 발자크의 작품을 예로 들며 언급한 ‘리얼리즘의 승리’를 연상케 한다. 작가가 아무리 구체제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더라도 정확한 현실파악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구체제의 몰락, 즉 역사의 진보라는 것이다. 따라서 책은 구슬픈 곡조를 띤 애상곡으로 와 닿는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책을 번역한 이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 원서 및 청대 궁중문서 등 한문자료를 일일이 대조하면서 설명을 붙인 역자의 솜씨와 노고에 거듭 고개를 숙인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