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계의 화려한 주역이었던 미국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속속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은행 3위인 메릴린치의 피흡수 합병, 4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이에 앞서 지난 3월 5위 베어스턴스의 몰락으로 이제 1위인 골드먼삭스, 2위인 모건스탠리만 남았지만 이들마저도 주가하락과 신용악화를 겪으며 앞날을 장담하기 힘든 처지가 되고 있다.

한때 한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과 외국 기업체들을 쥐락펴락하던 투자은행들이 무너진 것은 우선적으로 미국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졌기 때문이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이후 투자은행들의 파생상품 투자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손성원(전 웰스파고 은행 수석부행장)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1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리먼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의 경우 자기자본비율이 3% 수준밖에 안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채권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즉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같은 상업은행의 경우 미 금융당국의 규제로 자본금 비율이 10%수준이지만 투자은행의 경우는 자기자본비율이 많이 낮았다는 것. 손 교수는 이어 “또 문제의 투자은행들은 단기채권으로 자산을 운용하며 투자대상을 다양화하지 않고 모기지 투자에 집중한 것이 문제였다”며 “투자은행들은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집값이 떨어지면서 문제를 안게 됐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특히 “지난해 8월 이후 서브 프라임 문제가 생기면서 미국 집값이 지금까지 18%나 떨어졌고 앞으로 25%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따라서 앞으로도 금융시장에서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교수는 지난 2001년 블룸버그가 미국내 5대 경제예측 전문가로 꼽았었다. 그는 이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금을 높이고 자산을 정리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과정’이 필수적인데 지금 같은 유동성 위기에서는 증자든 매각이든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여기에 투자은행 내부의 투명하지 못한 경영 시스템, 금융관리당국의 철저하지 않은 규제도 부실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안정적인 자산운용으로 유명한 UBS는 미국의 주택저당증권(MBS)에 투자했다가 올해 초 무려 380억달러의 손실을 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당시 사태의 발생배경을 면밀히 분석한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UBS는 성장 제일주의에 치중해 과욕을 부린 사실이 드러났으며,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리스크 관리에서는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UBS는 투자은행(IB) 부문을 통해 구조화채권 등 파생상품 투자에 집중, 위험을 감수한 고수익을 추구했다.

소수의 파생금융 전문가들이 이 업무를 추진, 초기에는 고수익을 올리며 회사를 살릴 구세주로 대접 받았다. 그러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지난 한 해동안 해당부서에서만 모두 120억달러의 손실을 본 사실이 드러났고 이후 사태는 경영진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금융당국의 엄격한 규제와 감독을 받는 일반 시중은행들과 달리 IB는 느슨한 규제·감독 하에 놓여 있어 상대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하며 고수익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

이에 따라 내부의 엄격한 통제 시스템이 중요하지만 일단 ‘고수익’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된 투자은행들이 적절한 내부 규제책 마련에는 소홀했고,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외풍을 맞아 회사 전체가 휘청거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