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아름답다. 아니, 그녀들은 아름답게 만들어진다.
지난 14일 베트남에서 열린 ‘2008 미스 유니버스’에서 베네수엘라 출신 다야나 멘도사가 왕관을 쓰면서 베네수엘라는 또 다시 ‘지구촌 최고의 미인국’임을 증명해냈다.

그동안 베네수엘라는 상당수 국가들이 아직 한번도 등극하지 못한 미스 유니버스 자리에 이미 4차례나 올랐고, 미스 월드 역시 5차례나 우승했다. 왜 유독 베네수엘라 여성들이 각종 미인대회를 휩쓰는 것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됐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회 전반적으로 미인들을 우대해주는 뿌리깊은 ‘미인 선호사상’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 같은 선호사상의 이면에는 미인 대회 외에는 별달리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양극화 사회의 가슴 아픈 단면이 숨겨져 있다.

◆‘미인 산업’의 본산 = 지난 2004년에 발표된 ‘세계 화장품산업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1인당 국민소득 대비 화장용품 소비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다. 인구 2640만명인 베네수엘라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구촌 전체시장의 9.3%를 차지한다.

사회적으로 각종 미인대회가 넘쳐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최고 미인학생’을 뽑는 대회가 줄줄이 이어지고, 스포츠 종목별로 최고의 미인선수를 뽑는 대회도 끊이지 않는다. 각종 축제와 기업체, 군대, 심지어는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미인대회까지 성황리에 열린다. 평균적으로 베네수엘라 여성이 평생 참가할 수 있는 미인 대회가 32개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워낙 미인 대회가 많다보니 ‘미인 학교(beauty school)’, ‘미인 공장(beauty factory)’이라 불리는 미녀 양성소가 도처에 존재한다. 이들 미인 학교에서는 6~7세의 어린이들부터 청소년, 20~30대 여성들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걸음걸이와 화법, 화장법, 체형 관리, 옷입는 법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받는다. 미인 대회는 늘 TV시청률 최상위권에 올라있고, 서방의 거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후원업체로 나선다. 패션산업과 미용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미디어 산업이 ‘미인’을 매개로 서로 순환구조를 이루면서 11억달러(약 1조1000억원·2004년 기준) 규모의 복합산업군을 이루고 있다. 지난 2004년 미스 베네수엘라 선발대회 중계방송이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유엔연설로 15분 동안 중단되자 분노한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거리에 화분을 던지고 공중에 총을 난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석유와 야구스타, 미인’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자랑하는 ‘베네수엘라의 3대 자산’이다. 미인 존중사상은 이미 사회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잡았고, 1981년도 미스 유니버스 출신인 이레네 사에스는 1998년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했다.

◆열광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 베네수엘라는 세계 5위의 산유국이고, 2007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2800달러에 이를 정도여서 ‘일반적 의미’의 후진국은 아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전체 인구의 37%이상이 절대 빈곤에 허덕일 정도로 빈부 격차가 극심하다. 20세기 초반부터 넘쳐나기 시작한 오일달러는 오히려 산업발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제조업 경쟁력이 취약하게 됐고, 일자리가 부족한 국민들은 도시에서 거대 빈민가를 형성하게 됐다. 젊은 여성들에게 암울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미인 대회를 통해 연예계로 진출하거나 사회 유명인사가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이레네 사에스뿐 아니라 1928년 당시 ‘학생 여왕’ 출신인 호비토 비얄바가 독재자 후안 빈센테 고메스를 무너뜨리는 데 중심 역할을 하면서 미인에 대한 존경심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뿌리박혔다. 여성계는 과도한 미인 숭배주의 풍토에 대한 비판을 가하지만 남미 특유의 ‘마리아니스모(성모 마리아처럼 따듯하게 가정을 돌보고 감성풍부한 여성을 숭상하는 풍토)’에 막혀 힘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1958년부터 시작된 TV방송은 국민들에게 ‘화면속 미국인들처럼 예뻐지고 싶다’는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1960년대 들어 미인 산업이 본격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현대사 들어 줄곧 독재자와 포퓰리스트, 국부유출 지도자들에게 시달려온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야구와 미인 대회는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해 온 셈이다.

양성욱기자 feelgoo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