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서 피어나는 맑은 기품… ‘군자의 꽃’이라

이미지 크게보기밤에 피는 수련 밤에 홀로 꽃을 피워 어둠을 밝히고 있는 수련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연꽃은 낮에 꽃이 피고 밤에는 오므라드는데 이 수련은 밤에 꽃을 피우는 특이한 품종이다.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일상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고 내일을 위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피서지는 아니더라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더욱 붐비는 곳이 있다. 아름다운 연꽃과 다양한 수생식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경기 양평의 세미원이다.

세미원은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갈래 물줄기가 합쳐지는 두물머리 인근에 있다. 세미원에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면 산과 강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환상적이다.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에 잠시 넋이라도 잃을라치면 진초록의 줄기에서 환하게 피어난 연꽃이 은은한 향을 뿌리며 발길을 붙잡는다.

진흙 속에서 자라고 흙탕물에서도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는 연꽃은 청결함·무구함·순수함을 나타낸다. 영롱하고 청초한 연꽃은 그 신비로움 때문에 불교와 연관이 깊다. 부처는 “물이 연잎에 붙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은 탐욕에 물들면 안 된다”고 설파했다. 이처럼 깨끗하지 않은 물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에서는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국 송나라 주돈이는 연의 기품과 아름다움을 군자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연은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깨끗이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다. 줄기의 속을 허허롭게 비우고도 겉모습은 반듯하게 서 있으며, 넝쿨지지도 않고 잔가지 같은 것도 치지 않는다. 그 향기는 멀리서 맡을수록 더욱 맑으며 정정하고 깨끗한 몸가짐, 높이 우뚝 섰으니 멀리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요, 가까이서 감히 어루만지며 희롱할 수 없다”며 연을 꽃 가운데 군자라고 했다.

7, 8월에 주로 꽃을 피우는 연꽃은 세미원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물론 세미원에는 연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창포, 석창포, 산수유, 네가래, 부레옥잠, 물배추, 버드나무 등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많다. 이 중 연은 오염된 물을 가장 확실하게 정화시키는 능력이 있고 이로 인해 한강을 맑고 아름답게 꾸밀 수 있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테마별로 꾸며져 있는 세미원에서 눈길을 끄는 곳은 바로 ‘모네의 정원’이다. 프랑스의 화가 모네(1840~1926)는 엡트강의 물을 끌어올려 연못을 만들고 그곳에 수련을 심었다고 한다. 수련의 아름다움과 고요한 물의 어우러짐에서 신비한 영감을 얻은 모네는 노년 시절 수련 그림에만 전력을 쏟았다. 모네가 꾸민 연못보다 더 멋진 곳이 모네의 정원이다.

소담하게 핀 백련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잉어 연못에는 실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품고 있어 흥미롭다. 500여 년 전 경연이라는 소년이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연못에서 잉어를 잡아 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를 위해 바쳤다는 내용이다. 효의 사상을 기려 만든 잉어 연못에는 효행로를 만들어 그 뜻을 더욱 기리고 있다.

석창원은 석창포가 있는 뜰을 말한다. 한강 물을 퍼올려 수생식물인 석창포를 심어 놓은 도랑을 통해 연밭으로 흘러 내려가도록 조경을 해놓은 곳이다. 자연사랑(自然舍廊)이라 부르기도 하는 석창원에는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자연을 즐기고 가깝게 했는가를 알 수 있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이 밖에도 세미원에는 나라를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들이 여럿 있다.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뜻이 담긴 불이문(不二門)과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연못에는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색의 수련이 심어져 있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 의사 안중근, 노산 이은상, 남이 장군 등의 시비(詩碑)에서는 선인들의 애틋한 나라사랑을 엿볼 수 있다.

세미원은 아늑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함은 물론 수질 및 환경 생태 실험의 장소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 가까워 가족단위로 또는 친구,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신비한 자태의 연꽃을 촬영하기 위해 사진작가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고 있어 하루에 2000명의 사전 예약자에 한해서만 세미원을 방문할 수 있다.

사진·글 = moon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모네의 정원’ 세미원을 방문한 몽골의 NGO단체 회원들이 수련이 활짝 핀 모네의 정원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