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한 명의 전사일 뿐이다.”

‘콜롬비아의 딸’로 불려온 베탕쿠르가 6년간의 피랍생활에서 풀려나면서 던진 첫 일성은 강했다. ‘잔다르크’라는 또 다른 애칭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대중 앞에서 다시 한번 자신이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임을 증명해 보였다. 2일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그는 “여전히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에게 봉사하기를 갈망한다”면서 대권 재도전 의사도 분명히 했다.

1961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베탕쿠르는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대신 부패와 범죄로 얼룩진 조국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던 인물이다. 유네스코(UNESCO) 대사를 지낸 아버지와 상원의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네루다·마르케스·보테로를 좋아했고 특히 네루다와는 시를 주고받는 ‘글벗’을 할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났다.

베탕쿠르는 콜롬비아 정치인들이 부모님과 밤이 깊도록 조국의 미래를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정치적 소명의식을 키웠다.

1982년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프랑스인과 결혼해 7~8년간은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외교관 아내로서의 조용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자연재해, 마약 카르텔, 내전 등으로 혼란스러운 콜롬비아 상황을 계속 접하면서 그는 점차 국민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1990년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1993년까지 행정부에서 실무경험을 쌓으면서 마약 카르텔 등 콜롬비아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면서 베탕쿠르는 변화를 위해 정치에 입문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베탕쿠르는 1994년 보고타에서 자유당 최고 득표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선거운동 당시 그가 ‘콘돔’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던 것은 유명한 일화. 에이즈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 상황에 아이디어를 얻어 콘돔을 착용하는 것이 부정부패를 막는 처방전임을 정치적 상징으로 고안해 낸 것이다. 베탕쿠르는 이때부터 부정부패와 맞서 싸우는 잔다르크의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이로 인해 살해 협박을 받아 아이들을 해외로 피신시켜 3년 동안 떨어져 살아야 했고 자신도 두 번이나 암살위기를 넘겼다.

1996년과 2001년에는 마약 카르텔을 고발한 ‘가슴에 솟는 분노’(국내 출간명은 ‘콜롬비아의 딸 잉그리드 베탕쿠르’)를 콜롬비아와 프랑스에서 각각 출판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서 베탕쿠르는 “내가 콜롬비아에서 이루려는 모든 것은 내 나라에서 행복하게 늙어가기 위해서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불행이 닥칠까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내 땅에서 살 권리를 얻기 위해서”라고 밝혀 콜롬비아 국민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삼페르 전 대통령은 이 책이 국내에서 출간되지 못하도록 막기도 했다.

더 이상 자유당에서 견디기 힘들어진 베탕쿠르는 1998년 산소당을 창당하고 그해 총선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되는 등 정치인으로서의 승승장구를 이어가 2002년에는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플로렌시아 유세를 끝마치고 보고타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게 납치됐다. 베탕쿠르는 납치된 후 수십 차례에 걸쳐 도주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 “베탕쿠르는 납치된 후에도 불 같은 성격이 여전했으며 게릴라들에게 무례하고 자극하는 행동을 많이 했었다”고 소개했다.

그가 피랍된 지난 6년 동안 FARC는 그의 생존 확인 동영상을 두 차례 공개했다. 베탕쿠르와 함께 피랍된 여성 정치인 클라라 로하스(45) 전 산소당 부통령 후보는 지난 1월에 먼저 석방됐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