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난국’을 돌파할 거의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30개월 이상 미국 쇠고기는 수출(미국)도, 수입(한국)도 하지 않겠다는 양국 수출·수입업자가 주축이 된 ‘민간 자율규제’방식이다. 나름의 ‘솔로몬의 묘수’로 제시된 것인데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이 ‘사실상의 재협상’으로 해석되는 동시에 ‘재협상이 아닌 조치’로 해석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율배반이자 모순된 상황이다. 배경은 이렇다.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게 하기 위해서는 재협상으로, 협상상대인 미국과의 통상·외교마찰을 피하려면 재협상이 아닌 것으로 비쳐야하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바닥을 드러내보이며 소진상태에 이르렀다. 국민들의 분노를 진화하기 위한 정부의 물대포가 과연 발화 지점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 이번 카드로 이 대통령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해보인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이 4일 적극적인 홍보전에 나선 것도 이번 조치가 비록 시한부 처방이긴 해도 극한 파국을 막는 ‘최선이자 현실적인 마지노선’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청와대 박재완 정무수석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전날 발표의 의미와 관련, “재협상이라는 세 글자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핵심은 농림부장관이 검역주권을 행사해 이미 수입중단 조치를 취했고, 앞으로도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은 금지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의 핵심요구가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금지’에 있는 만큼 미 정부와의 통상마찰을 피하면서도 실질적인 재협상효과를 거둘 수 있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재협상’이라는 단어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에 대해서는 설득과 압박이 동시에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한국 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고 국민여론이 어떻다는 것을 미국 정부도 잘 이해하고 수용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청와대 외교라인 고위관계자도 “미국 수출업자들도 5%에 불과한 30개월 이상 쇠고기 때문에 나머지 95%의 수출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에 촉구할 예정인 추가 조치는 미 농림부로 하여금 ‘30개월 월령표시’ 의무화를 행정규칙으로 법제화하는 방안을 의미한다. 사실상 최후 단계인 이 같은 법제화에 이르기 전에 우선 1단계로 미국내 축산업자들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금지 자율결의, 2단계로 국내 수입업자들의 수입금지 결정, 3단계로 양측의 최종 합의 등이 완료돼야한다.

이번 ‘자율규제’ 방식을 결정하기까지 정부가 가장 우려했던 대목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미칠 악영향이었는데 이것도 일정 정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미국 내 반대론자들에 빌미를 주는 등 한·미 FTA에 분명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예상보다 처리 시점이 늦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양국 모두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9일로 예정된 국민과의 대화를 일단 취소하고 조만간 다른 방식을 통해 이 같은 정부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설명할 방침이다.

김상협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