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독교도 믿음과 함께 깨침을 강조하는 폭넓은 종교로 변해야 하고, 그래서 ‘무조건 믿으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아하!’를 연발하며 갈 수 있는 깨침의 길도 열려 있음을 알릴 때가 됐다.”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의 저자인 저명한 종교학자 오강남(비교종교학) 캐나다 리자이나대 교수는 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우리함께회관에서 열린 씨알사상 월례모임의 ‘함석헌과 도마복음’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예수가 말하고자 한 것은 ‘깨달음’이며, 그것은 불교나 도교, 유교 등과 다르지 않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근래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모으는 도마복음은 1945년 이집트 나일강 기슭에서 발견된 고대문서로, 예수의 제자인 도마가 스승의 말을 기록한 ‘어록’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복음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 공관복음과 상당히 차이가 나는데, 특히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적, 예언의 성취, 종말, 부활, 최후심판, 대속(代贖) 등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일관되게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로 인해 도마복음은 그 당시 이집트, 로마를 비롯해 중동 일대에 성행하던 영지주의(靈知主義·Gnosticism)의 영향을 받았다며 주류 기독교로부터 배척을 받기도 한다.

오 교수는 “‘영지’의 그리스어 ‘gnosis’를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깨침’ 혹은 ‘깨달음’에 해당하는 말로,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 곧 반야(般若), 통찰, 꿰뚫어 봄, 직관과 같은 계열의 말이며, 불교에서 반야를 통해 성불과 해탈이 가능해짐을 말하듯, 도마복음도 이런 깨달음을 통해 참된 구원이 가능함을 주장한다”고 말했다. 즉 “도마복음은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gnosis)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도마복음 중에는 “네 자신을 알라. 그러면 남도 너희를 알 것이고, 너희도 너희가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제3절b)는 구절이 있다. 오 교수는 “알아야 할 것, 깨쳐야 할 것 중에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내가 바로 살아계신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사실, 내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侍天主)는 사실, 이 하나님이 바로 내 속 가장 깊은 차원의 ‘참나’ 혹은 ‘얼나’에 다름 아니라는(人乃天) 이 엄청난 사실을 ‘깨달음’”이라고 해석했다.

오 교수는 “이 같은 깨달음이 오늘날처럼 정보화되고 교육 기회도 많아진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 되는 ‘신비주의의 민주화’가 돼야 한다”면서 기독교의 변화를 주문했다. 오 교수는 함석헌의 “하나님은 다른 데선 만날 데가 없고, 우리 마음속에, 생각하는 데서만 만날 수가 있다” “그리스도는 예수에게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내 속에도 있다”는 등의 ‘씨알사상’이 바로 도마복음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