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첫 불을 켠 이래 평화적으로 진행돼 온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주도 세력 교체를 겪으면서 불법 도로점거 시위로 변질되고 있다.

‘평화적인 문화제는 보장한다’는 경찰과 10대까지 참여하는 시민 문화제를 펼쳐 온 촛불문화제 지도부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은 무너지고 촛불의 성격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0대들의 ‘평화적 불씨’는 설 자리를 잃고 대학생들과 노조원 등이 주축이 된 정치투쟁이 그 자리를 대신할 태세다.

◆‘촛불의 얼굴’이 달라졌다 = ‘촛불’ 주도세력의 변화는 24일 오후부터 감지됐다. 이날부터 ‘청와대로 가자’며 거리 시위를 주장한 ‘강경파’와 평화적인 문화제를 해야 한다는 ‘온건파’ 간의 균열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25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도중 자유발언에 나서 자신을 ‘386세대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어제(24일)도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는데 그건 ‘절규’가 아닌 ‘놀이’였다”며 “노동자, 빈민들의 가슴에 못이 박혀 절규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게 뭐냐. 모두 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386 모임’ 소속이라는 또 다른 참가자 일부도 촛불문화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거리로 나가자”고 선동했다. 10대 등 일부 참여자들 속에서 이들에 대해 “나가라”는 외침이 쏟아지는 등 혼란이 뒤따랐고, 결국 이날 촛불문화제는 ‘평화적인 문화제’측과 ‘가두시위’측으로 나뉘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국민주권수호시민연대(국수련)라는 신생 네티즌 모임이다. 이 모임 주최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청계광장까지 ‘생명주권수호 국민평화행진’에 참여했던 시민들 중 상당수가 결국 이날 오후 불법 도로점거 시위의 주축이 됐다.

지난달 28일 대운하반대시민연합 등으로 활동하던 네티즌 모임 6, 7개가 모여 결성됐다는 국수련은 다음달 1일에도 ‘이명박 대통령 사임 촉구 국민대행진’을 예고하고 있다. 국수련은 25일에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차로 불법 점거를 예고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존 촛불문화제를 이끌어 온 국민대책회의 외에 국수련, 인터넷 포털 상의 ‘386 모임’, 민주노총 등 새로운 단체들이 대거 합세하면서 불법 시위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과격해진 구호, 과격해진 방식 = 주도세력이 10대에서 20~40대로 바뀌고 ‘평화적인 촛불문화제’라는 묵계도 깨지면서 시위는 한층 과격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24, 25일 밤 서울은 시내 곳곳이 극심한 체증을 빚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24일과 마찬가지로 25일의 불법 도로점거 시위도 ‘자리에 앉아있어봐야 달라질 게 없다’, ‘청와대로 가자’는 돌발 선동으로 촉발됐다. 1000여 명으로 시작된 시위대는 25일 오후 6시쯤 서울 세종로를 점거한 데 이어 26일 오전 1시가 넘어 경찰에 의해 해산할 때까지 무려 7시간 넘게 시청앞~서울역앞~명동~동대문~시청앞~서대문~신촌로터리 등 서울의 심장부를 누볐다. 돌발 선동에 따르다보니 경찰에 의해 진로가 차단될 때마다 곳곳에서 해산할 것이냐, 시위를 계속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시위대의 구호도 한층 과격해졌다. ‘국민 기만, 서민 말살, 이명박을 탄핵하라’, ‘3개월이 백 년이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쓰여진 대형 현수막이 등장했고 시위대는 “폭력경찰 물러가라”, “독재 타도”, “이명박 탄핵” 등의 정치색 짙은 구호들을 쏟아냈다. 결국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양측 모두에서 부상자가 속출했고, 이틀동안 총 68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조민진·임정환기자 wayto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