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이 경제·인문사회이사회를 통해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장들의 사표를 일괄적으로 수리한 것은 법률적 논쟁이 불가피하며, 정치적으로도 순수 연구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총리실이 이들 18명의 사표를 선별 수리한 이후 해임자들의 행정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 행정소송 가능성 배제 못해 = 1999년 1월 시행된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은 경제·인문사회이사회 산하 23개 국책연구기관장의 임기를 3년으로 못박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사표를 제출한 18개 산하 기관장들은 최장 2010년 말까지 임기가 상당 기간 남아있는 상태다. 특히 이들은 사실상 총리실의 일괄사표 방침에 따라 사표를 낸 만큼, 법률적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두환 정권 출범을 앞두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1980년 7~9월 이른바 ‘정화계획’에 따라 5000명이 넘는 공무원들의 일괄 사표를 받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별 수리했다가, 정부가 1989년에 ‘해직공무원의 보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해직 공무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6급 이하 공무원은 특별채용하는 등 정치적으로 타협을 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공기업 사장의 사표를 제출받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면서 “새 정부의 재신임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각 부처 산하에 존재했던 국책연구기관을 경제·인문사회이사회 산하로 통합시키는 것으로 법 제도가 바뀐 1998년에도 연구기관장들의 대폭 교체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법률가들의 해석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정부는 무엇보다 일괄사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또 정부가 이들 기관장의 사표를 선별, 수리하더라도 과연 합리적 이유가 있었는지를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택근 변호사는 국책연구기관장들의 일괄사표 제출과 관련, “본인의 의사에 반할 정도의 강압이 있었는 지에 대해 의문의 든다”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인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 독립·중립성 훼손 논란 = 법상 규정된 연구기관의 독립성 및 자율성 침해 논란도 번지고 있다. 지난 28일 사표를 제출한 이종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책연구기관, 공공기관 기관장들에 대한 사표 종용 사례는) 최근 20년간 어느 정권 교체기에도 없었다. 이는 정치보복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면서 “국책연구기관은 학문의 다양성과 정책의 자율성,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표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이종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은 “법 절차에 따라 공모된 기관장들한테 사표를 강요하는 것은 법 절차를 무시한 업무방해”라면서 “학문 발전을 위해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