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간절한 기원 조개를 캐고 낙지와 주꾸미를 잡던 아낙네들이 충남 태안군 고남면 옷점해변 조개부리 마을에서 바다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기름유출 사고로 대재앙을 맞은 어민들은 태안의 바다가 새로운 생명의 바다로 거듭 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석화야! 석화야! 석화야!

태안의 아낙들이 굴을 부르는 소리다. 바다의 신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빈다. 굴을 많이 따게 해 달라고. 처음에는 신명나게 불렀다. 그러나 굴은 대답이 없다. 그들은 죽어 있었다. 아낙들이 절규하듯 외친다. 굴을 살려 달라고. 굴을 살려 내라고.

충남 태안 앞바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23일로 꼬박 79일이 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태안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대재앙에 그들은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바다로 변한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어민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어떤 사람들인가. 전국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밀물처럼 태안으로 향했다. 얼마 전 그 숫자가 백만명을 넘었다니 이 보다 더 감명할 것이 또 있을까. 어민들과 함께 처절한 고통을 나누며 그들은 태안에서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죽은 바다를 살리고 꺼져가던 뱃사람들의 삶에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던 태안 사람들은 봉사자들의 헌신적 노력에 위안을 찾아가는 듯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고자 했다. 그렇지만 인간들의 노력은 대자연 앞에선 무력했다. 한번 파괴된 개펄과 모래톱과 청정바다는 쉽게 되돌려지지 않았다.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어촌의 민심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20일 남면 원청리 별주부마을에서는 용왕에게 제를 올리는 행사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바다의 의존도가 적은 지역이지만 바다를 향해 주민들은 절을 올렸다. 제발 마을이 평온하고 고기도 많이 잡게 해 달라고 빌었다. 어떤 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절을 백번은 해야겠다고. 그의 속마음이 무척이나 절박해 보였다. 안면도의 남쪽 끝 마을 옷점 포구에서는 조개부르기제를 열어 올해의 풍어를 기원했다. 예전부터 마을에서 내려오던 행사로 주민 200여 명이 모두 참석했다. 그동안은 축제 형식으로 열렸지만 올해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기름유출로 어민들의 피해가 최악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웃고 춤추고 즐기지는 못하지만 정성스러운 의식에 찬 바닷바람도 잠시 비껴가는 듯했다.

태어나서 줄곧 옷점 마을에서 살았다는 이창례(61)씨는 답답하다며 손으로 가슴을 치고 있었다. 평생의 업으로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고 굴을 따 왔는데 이제 이런 일들을 못하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너무 아프다고 했다. 추우나 더우나 바다에서 일을 하고 돈벌어 자식 공부시키며 살아왔는데 그러지 못하니 병이 생겼다고 했다.

태안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름유출 피해를 보고 있는 서산의 간월도에서도 21일 굴부르기 군왕제가 열렸다. 조선조부터 굴 채취를 생업으로 했던 마을 부녀자들에 의해 굴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행사로 열린 것이다. 간월도 어민 최창권(59)씨는 “기름유출사고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피해 어민들을 돕는 길은 외지인들이 다시 서해안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옷점 마을 아낙의 간절한 소망이 나의 귓전에서 시리도록 아프게 울리고 있었다.

“넓고 넓은 바다와 모든 해산물을 주관하시는 용왕님 전에 두 손 모아 빌고 빌며 또 비나이다. 우리 옷점 마을 모든 남정네와 아낙들은 바다 없이는 못 살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늙으신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고 어린 자식을 돌보느라 죽은 나무를 가로 타고 길도 없는 바닷길을 온 종일 돌아다닙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고 억수로 장마 지고 엄동설한 눈보라쳐도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나이다. 지금은 원유 유출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우리가 지키고 후대에 물려 줄 고귀한 어장 514㎞ 태안군 바닷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또한 오대양 모든 해산물들이 여기 태안으로 다 모이게 해주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사진·글 = moon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조개야… 조개야…” 옷점해안에서 열린 조개부르기제에서 이 마을 부녀자들이 조개야!를 외치며 어민의 안녕을 빌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아낙들 한마음 기원 간월도 아낙네들이 굴부르기제에서 무릎을 꿇은 채 안심하고 굴을 채취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하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굴바구니 가득 차길”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에서 열린 굴부르기 군왕제에서 마을 부녀자들이 굴바구니를 머리에 인채 마을을 행진하고 있다. 굴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왔다.

이미지 크게보기“풍어 비나이다” 원청리 바닷가에서 열린 용왕제에서 어민들이 기름유출 사고를 극복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그래도 아름다운… 태안군의 각 항구가 어업이 전면적으로 중단된 가운데 고남면 옷점해변이 일몰로 발갛게 물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