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9일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개최된 교육인적자원부 주관 영어수업개선연구대회 발표에서 초등학생들이 영어로 발표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30일 발표한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 방안’이 기존 읽기·듣기 위주의 영어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영어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인지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교사를 늘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말하기, 쓰기 중심의 실용적인 영어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큰 틀에서 맞지만, 점수 위주의 대학입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한 ‘영어 사교육 광풍’은 잠재울 수 없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영어교사 양성 체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점수 위주 영어교육이 문제 = 인수위는 2015년도부터 듣기·읽기·쓰기·말하기 등 4개 영역을 평가하는 ‘한국형 국가영어능력 평가시험’을 도입할 방침이다. 2012년부터 중·고교의 영어수업을 회화 중심으로 바꿔 학생들이 영어능력 평가시험에 대비케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기, 쓰기 중심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한다 해도 대학에서 높은 영어 점수를 요구하는 한 ‘점수 따기 영어교육’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선 고등학교 이모 교사는 “대학에서 토플이나 텝스 정도의 높은 실력을 요구한다면 말하기 위주로 학생들을 가리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인철 전교조 부대변인은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영어인증제도나 영어능력평가제도를 도입하면 정규 영어 시간만 가지고 만족할 학생이나 학부모는 없을 것”이라며 “또 인증제도에서 합격 등급을 이미 받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일선 교실의 파행이 불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사교육비 줄일 수 있을까 =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영어 공교육 방안이 오히려 사교육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박부권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행 읽기 위주의 영어 입시에서는 텍스트를 보고 깨치면 되지만, 생활영어는 주변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쉽지 않다”며 “학교에서의 영어교육 말고 사교육 등에 또 다시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인수위가 주최한 공청회에서도 사교육비 증가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이효웅 아시아영어교육학회장은 “영어로 하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방과 후에 학교에서 별도로 영어수업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영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병갑 구로중학교 교장도 “영어학습 목표가 단계적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중학교 단계부터 진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일종의 ‘무한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이 경우 학생들이 사교육의 선행학습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6세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 수업이 늘어나면 영어 유치원이라도 보내야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영어교사 양성 및 인프라 문제점 = 인수위가 주장하는 것처럼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영어교사가 잘 양성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박부권 교수는 “우리 상황에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교사를 길러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만약 올바르지 않은 영어로 말하고 듣고 하는 교육이 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영어전용교사 양성뿐 아니라 원어민 영어교사 채용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지만, 현재 원어민 교사 1명이라도 두고 있는 고등학교는 전체 고교의 30%정도 뿐이다.

일대일 영어회화 및 회화가 가능하기 위한 학급당 학생 수 조정, 영어 교재 및 기자재 등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영어 공교육의 실효성을 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충남·박수균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