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달곤 한국행정학회장과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 조희연 비판사회학회장(왼쪽부터)이 19일 밤 문화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대선이후 정국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곽성호기자

12·19 대선이 끝나면서 연말 정국이 본격적인 정권이행기로 접어들고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새정부구성을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섰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 등은 시선을 내년 4월총선쪽으로 옮기고 있다. 올대선에서 확인된 민심은 무엇이고, 향후 정국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우리 학계를 대표하는 한국정치학회의 양승함 회장과 한국행정학회의 이달곤 회장, 그리고 진보학자그룹인 비판사회학회의 조희연 회장이 19일 문화일보 편집국에서 2시간에 걸쳐 심야 긴급좌담을 나눴다.

＜좌담 참석자들＞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

이달곤 한국행정학회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조희연 비판사회학회장(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

진행=이미숙 정치부 차장. 정리=김성훈 정치부 기자


1. 올 대선은 인터넷과 TV위력이 약화됐고, 정책대결도 찾아보기 힘든 이상한 선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2007년 대선의 최대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이달곤 회장 = 전체적으로 판도가 늦게 짜였고, 너무나 많은 후보가 출마했다는 게 첫 특징입니다. 대선 주제가 전부 한 사람의 비리 문제를 가지고 진행됐습니다. 또 처음부터 1위와 2위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지지율보다는 BBK동영상 등이 관심을 끄는 묘한 선거였습니다. 여야 구별도 불분명해졌고, 보수세력도 의외로 분열이 됐습니다.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을 확인한 선거였습니다.

◆ 조희연 회장 = 이상한 선거, 묘한 선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나가는 정권, 즉 과거에 대한 평가가 미래를 향한 경쟁을 오히려 압도적으로 결정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의 이반이 강렬했는데, 그에 대한 대안을 창출하지 못해 선거과정 내내 야당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유지됐습니다. 이와 함께 ‘묻지마 변화욕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정부가 너무 실망스럽고 도저히 못살겠다는 민심이 형성되면서 강렬한 변화욕구가 있었던 거죠. 그 욕구를 집권당 후보가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야당 후보가 변화욕구를 수용한 역설적인 선거가 바로 올해 대선입니다.

◆ 양승함 회장 = 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반응이 그대로 반영된 선거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 정책선거가 실종됐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또 당선자는 확정됐지만 ‘이명박특검’ 수사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현 당선자가 제대로 취임할지 여부도 의문시되는 선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대선과 총선이 연결돼 있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의 압도적 후보가 있으면 나머지 후보는 연합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그렇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내년 총선 때문입니다. 이번 대선판도를 보면 적어도 4∼5개의 정당이 내년 총선에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하지 않을까 합니다.

◆ 조 = 우리 유권자들의 이념지향은 대개 보수3 : 중도4 : 진보3이라는 황금분할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중도가 보수쪽으로 이동, 보수군이 70~80%를 차지하는 형국이 조성됐습니다. 이것이 올해 대선의 특별한 경향일지, 아니면 향후에도 이념구도의 황금분할은 붕괴된 상태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 양 = 이명박 후보 당선을 단순히 유권자층의 보수화결과로 평가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이 당선자의 정책은 상당히 중도적이고, 서민경제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 당선자가 앞으로 상당히 개혁적 성향을 띨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이번 선거과정에서는 보수의 내전이 본격화하는 한편, 진보의 분열 현상도 깊어졌는데, 이같은 이념 분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 이 = 한국사회는 더이상 이념의 정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실용의 정치, 이익의 정치 성향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수의 내전, 진보의 분열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가 다기화된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이명박 후보의 배경은 우파 보수지만 내세우는 정책은 다기화 현상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문국현 후보도 어떻게 보면 진보 같지만 경제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보수입니다.

◆ 조 = 보수나 진보가 분화 상태에서 다당제적 경쟁구도로 치러진 게 이번 선거입니다. 나름대로 경제적 혁신플랜을 갖고 있는 신보수의 이명박 후보와 극우반공주의적 구 보수를 직접 계승한 이회창 후보가 분화됐습니다. 진보도 넓은 의미에서 중도개혁적 진보그룹이 있는 반면 민주노동당 같은 급진 진보그룹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가 경제회생 문제로 압축된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는 ‘경제가 되려면 이명박이 당선돼야 한다’는 강력한 국민적 담론을 만들어낸 반면 개혁후보 대표격인 정동영 후보는 그와 경쟁할 수 있는 혁신적 중도개혁 경제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권영길 후보가 상징하는 반 신자유주의적 급진 경제담론은 먼 미래의 일일뿐 당장 실현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치부됐습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문국현 후보가 고투했지만, 개혁진영의 대표성이 없기 때문에 파괴력을 갖지 못했다.

◆ 양 = 이번 대선은 국민이 국가의 방향을 결정한 선거입니다. 우리는 과거 독재 대 민주, 또는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 대결, 이후 지역주의 등장과 이로 인한 한풀이 정치, 수평적 정권교체로 상징되는 지배 엘리트 교체를 경험했습니다. 진보·좌파로 표현되는 노 대통령과 386 세대 중심의 이념적 국정운영도 경험했습니다. 하나의 정치체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고 나니, 이제는 국가의 방향을 제대로 한번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나왔고 이게 시대정신이 됐습니다. 경제도 침체되고 국민적 갈등, 분열양상을 경험하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국민들이 중도적 성향에서 실용주의로 정부를 택한 것이라고 봅니다.


3. 이번 대선은 여당 없이 치러진 선거이고, 그런 점에서 정당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해석도 나오는데….

◆ 이 = 노무현 정권은 국민들 요구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정부였습니다. 그래서 여당이 스스로를 해체한 것인데 해체했다고 그 당이 야당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이 볼 때는 엄연히 여당입니다. 여당은 정책으로 선거를 해야 하는데 대통합민주신당은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5년 전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또 쓰려다가 망해버린 것입니다.

◆ 조 = 집권당이 노 대통령 재임기간중 스스로 몰락한 것은 반독재 민주정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이번 선거결과는 기존 개혁세력, 진보세력에게 국민들이 준엄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국민의 비합리적 선택이라거나 ‘국민이 미쳤다’는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집권당임에도 남의 탓을 하는 행태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인 만큼 통절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 양 = 여당 없이 치러진 대선이라고 보는 것은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킨 얘기입니다. 여권은 나름대로의 절차를 통해 정동영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습니다. 단지 여권의 무책임성으로 인해 당이 5~6번 이합집산하면서 전열이 정비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여권은 총선을 계기로 재편, 적어도 2~3개 이상의 정당이 난립할 것 같고 이명박 당선자가 한나라당 개혁운동을 진행시킬 경우 여기서 탈락되는 극단적 보수층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은 불행한 측면도 있는 선거였고. 정당정치 측면에서는 분명히 퇴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 = 대선투표율이 62.9%에 머문 것은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화를 낸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당이 선거를 이벤트로 만들려고 한다든지, 17대 국회가 여러 지표로 볼 때 제일 형편없었다는 것 등에 대해 국민들이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총선에서도 준엄한 심판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그런 점에서 대선이후 정국은 앞으로 상당히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고, 정치인들이 긴장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4.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 간의 득표율 격차가 530만표로 역대 대선 최고치인데, 두 후보의 승패 요인과 배경을 분석하신다면.

◆ 조 = 노무현정부 5년에 대한 불만과 박탈감 때문에 현정부에서 이반한 다수 대중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게 이 후보의 최대 승리요인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신개발주의적 패러다임을 통해서 대중의 불만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메시지를 던졌으나 여권은 이에 대항해 새로운 인물이나 대안적 프레임을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국민들의 이런 변화욕구가 어떤 행로를 그릴지 주목됩니다. 이명박 집권 이후 정책이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변화욕구가 채워지지 못하면 곧바로 비판적 정서로 전화될 수 있는 양면성도 있습니다.

◆ 양 = 이명박 후보의 승리는 3가지 정도가 겹친 것 같습니다. 첫째는 ‘87년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 요구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과거 3김 정치, 이후 노무현과 386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에 대해 한마디로 정권교체를 요구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을 하면서 나름대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같은 개인비리에도 불구하고 당선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투표율이 62.9%로 아주 낮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정치무관심보다 냉소주의에 가까운 것입니다. 투표율이 낮아진 데는 이명박 후보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국민들은 그의 비리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고, 일단 바꿔보자는 생각에 덮어준 것입니다.

◆ 이 = 한국사회는 지금 민주주의가 되고,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2만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후기 물질주의적 사조가 확 퍼져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돈이 아주 중요한 삶의 수단이면서 목표가 되는 사회인 것입니다. GDP 4만달러 시대가 되면 신뢰나 봉사 등 또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지금 이 정도의 물질적 수준에서는 너무 과도하게 분배를 하거나 북한문제에 부담을 지게 된다면 헤어날 수 없는 길로 가지 않을까 하는 위기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 사회에서는 빨리 엔진에 시동을 걸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리는 정부를 선택했고, 일단 달리면 사회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 양 = 개인비리 문제는 심각한 것입니다. 차라리 이명박 당선자 비리가 왕년의 권력형 부조리, 정경유착 등이었다면 당시 시대상황에서 불가피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비리는 개인이 상업적 행위를 하다가 의혹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위장전입, 위장취업 외에도 여러 의혹이 있는데 안정되고 성숙된 민주주의로 가려면 그런 부분이 속시원하게 해명돼야 합니다.

◆ 조 = 그게 이명박 후보 당선의 딜레마라고 볼 수 있죠. 일종의 ‘경제회복 메시아주의’ 때문에 이명박 후보의 도덕적 흠결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투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이 점이 앞으로 이 당선자에게 정치적 불안정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당선자의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후보가 신당 후보로 결정됐을 때 많은 사람이 ‘대선은 끝난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만큼 정 후보가 대타가 될 수 없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양 = 정동영 후보는 구조적으로 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범여권 후보가 된 것만도 본인으로서는 대단히 선전한 것 아닐까요.

정 후보는 조직과 자금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했기 때문에 신당 후보가 될 수 있었지만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통해 지지를 확대하려 한 것이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조 = 이번 대선에서는 친노-반노 프레임을 넘어선 포스트 노무현 프레임을 만들지 못해서 문제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노무현적 신프레임을 갖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단절하면서 계승했는데, 정 후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 이 = 정 후보는 주요 개념으로 민족을 잡은 것 같고,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은 ‘말의 정치’보다는 ‘땀의 정치’를 선호합니다. 그러니 경제를 잡은 후보에게 간 것입니다.


5. 대선기간중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전격 출마선언을 하면서 선거운동지형이 돌변했는데 이회창씨가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은?

◆ 조 = 보수 분열의 시작으로 봅니다. 극우적 보수와 경제적 실용주의를 결합한 신보수 후보 간 이념분열인데, 이명박 후보의 도덕적 흠결문제가 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것은 이명박시대의 정치적 불안정성 근거로 남을 것으로 봅니다.

◆ 양 = 보수진영 분열로 갈 가능성은 있습니다. 내년 총선이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 극보수 잔재들이 결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큰 변수는 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선거용 정당으로 잠시 존재할 것 같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자꾸 잡으려는 이유는 박 전 대표가 들어와야 의미있는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인데 박 전 대표로서는 괜히 그쪽으로 들어가 모험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이 당선자가 잘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을 잘 이끌어 포용하고 가야지, 노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쓸데없이 당 이름을 바꾸며 한나라당을 ‘두나라당’을 만들어 놓으면 정치가 퇴보합니다.

◆ 이 = 지금 여당은 이념 스펙트럼이 극단적으로 넓습니다. ‘탄핵의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언젠가 정리돼야 합니다. 이념으로 재편되면 제일 좋은데 문제는 또다시 지역당으로 갈 것 같아 걱정입니다.


6. 이번 대선정국에서 주가를 제일 높인 장외스타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의 향후 영향력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 양 = 그는 앞으로 한국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내년 총선에서 안정적 다수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것은 박 전 대표가 당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박 전 대표는 중도화된 유권자들의 실용적 성향을 대변해주는 정치인으로 부상했습니다. 차기 대권에 대한 행보를 가장 먼저 굳힌 사람의 한 명이라고 봅니다.

◆ 이 = 박 전 대표가 뜨는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회고주의 때문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대선과정을 통해 박 전 대표는 미래의 정치인이 됐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분명한 카리스마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이번 대선을 통해 비로소 부모로부터 독립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7. 문국현 후보와 그의 당이 독일의 녹색당과 같은 제 3당이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 조 = 이번 대선에서 집권세력이 혁신된 경제담론을 내놓고 인물로 상징화시켜야 했는데 정동영 후보는 그것에 실패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문국현 후보가 일정한 잠재력을 갖고 지지층을 확보한 것은 의미있는 것입니다. 막판에 사표방지심리 등에 의해 5.82%까지 내려갔지만 상당한 잠재력을 보여줬습니다. 문제는 비(非) 민노당이면서 비 신당적인 정당 공간이 굉장히 협소하다는 것입니다. 대선과정에서 문 후보가 단일화 협상을 통해 반독재 정통재야 및 광주의 유권자와 결합할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그는 독자생존을 택함으로써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경제와 경쟁할 문국현식 혁신적 경제담론의 공간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고 봅니다.

◆ 이 = 한국경제가 이미 포스트 포드주의에 들어가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 틀을 갖고 얘기합니다. 문 후보는 ‘어셈블리 라인’ 시대의 담론을 넘어 후기산업사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경제가 어셈블리 라인식 경제, 콘크리트 다리 놓는 경제가 아니란 얘기를 한 것입니다. 사회 변화를 잘 포착한 점은 박근혜 전 대표와 비슷합니다. 다만 박 전 대표는 한국사회가 가는 방향을 잘 탔고, 문 후보는 그런 사조의 흐름은 지적했지만 결국 5.82% 득표에 머문 것입니다. 이 당이 총선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창조한국당을 미국의 랠프 네이더나 독일의 녹색당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당은 환경 정당, 소비자 정당이 아니라 생산을 지향하는 당입니다.

◆ 양 = 문국현 후보는 양심적 시민사회세력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국민다수의 정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 인물이 국가적 차원의 정치를 하겠다고 출마한 것은 오히려 방향을 잘못 유도할 수 있습니다. 시민운동과 국가경영은 전혀 다릅니다.


8. 권영길 민노당 후보의 3% 득표는 실패로밖에 볼수 없는데 향후 민노당의 진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이 = 분명 실패라고 봐야겠죠. 대선후보를 교체하지 않은 게 문제입니다.

◆ 양 = 원래 대선에서 민노당 몫은 3%입니다. 따라서 3%를 실패라고 볼 수 없습니다. 민노당이 총선에서 10%를 받은 것은 정당 투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노당은 유일한 정강정책 정당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보고(寶庫)입니다. 어느 사회든 10% 정도의 극단적 좌파가 존재하는 것은 건전합니다.

◆ 조 =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은 큽니다. 다만 이번에는 대중의 강렬한 변화와 혁신 요구를 읽지 못했다는 게 한계입니다. 권영길후보는 3수의 노쇠한 후보로 투영됐습니다. 심상정 후보나 노회찬 후보가 됐다면 문국현 공간을 잠식하면서 10%에 육박하지 않았을까요?

◆ 이 = 10%까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실패하진 않았을 것이다.


9. 87년체제 20주년의 해에 치러진 올 대선은 보수의 대약진, 진보의 퇴조 경향이 뚜렷한데 민주항쟁의 산물인 87년체제의 미래는 어떻게 봐야할까요?

◆ 양 = 87년체제는 민주항쟁에 이은 6·29선언을 계기로 만들어진 체제입니다. 신군부가 강경, 온건으로 분열되면서 그 상황을 자유화 정책을 통해 유지시키려 했던 게 핵심이죠. 제일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직선제로 바뀌고 임기 단축하고 단임제를 한 것인데 이 과정이 일단 군부독재를 종식시키자는 긴급성에 의해 조급히 만들어졌다는 게 문제입니다. 현행 헌법의 근간도 87년체제의 산물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게 이 헌법인 만큼 앞으로 민주주의 심화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절차적 민주주의 이상의 사회 각계각층 다원적 세력이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경제적 분야에 있어서도 민주주의가 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입니다. 그러니 헌법개정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 이 = 지난 20년 경험을 가지고 2007년 체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계제는 왔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정상국가로서 민주주의 성숙단계를 밀어올리는 여러 시스템의 구비가 필요한데 개헌은 그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을 국민들이 바랄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이 당선자의 성격도 시스템 손질보다 민생문제나 경제 살리기 쪽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틀림없이 총선때 제기될 것이고 이게 총선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조 = 87년체제가 일정한 전환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87년은 6월 항쟁과 6·29 선언이 교착하면서 만들어진 체제고, 과거 독재유산을 극복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시대정신이 됐던 시대입니다. 민주주의 실현이 절차적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실현돼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양극화가 되고 비정규직화가 진전되는 식으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장중심적 구조개혁에 의해 민주주의 의미가 퇴색되는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실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의 조건이 위협받는 것을 해결해 달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그것이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도록 요구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08년 체제는 신보수주의가 주도하는 체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체제 하에서 어떻게 양극화나 신자유주의적인 파괴를 제한하는,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 것이냐 하는 새 과제를 우리가 안게 된 것입니다.

◆ 양 = 조 회장께서 신보수주의라는 용어를 썼는데 신보수주의는 통상 미국의 네오콘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네오콘은 우리와 다르고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시대는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시대는 있었습니다. 김영삼정부말기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강제적으로 들어왔고, 김대중정부의 대중경제론 또한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전개됐습니다. 노무현정부도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며 다시 신자유주의 파고를 높이고 있는 상황인데 이것이 이명박 시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시장개입 최소화를 지향합니다. 또한 작고 강한 정부를 표방합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는 이같은 시도가 많이 실패했는데 이제 이명박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실험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봅니다.


10. 대선후 곧바로 ‘이명박 특검’이 진행되고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선이후 정국을 전망하신다면?

◆ 양 = 이 당선자 대선공약을 보니 서민경제, 중산층 부활에 많이 역점을 두고 있더군요. 신자유주의는 대기업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기업친화적인 문화를 만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입니다. 신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이같은 장점을 잘 살려 국정운영을 했으면 합니다. 새 정부는 반동적인 정치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념적 대립을 지양하고 그야말로 포용적으로 가야 합니다. 중도실용주의적 사고로 모든 국민을 통합시키는 화합을 주요과제로 내세워야 합니다.

◆ 조 = 신정부는 친기업적이고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전면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작은 정부, 시장화, 탈규제 기조를 택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정책이 갖는 위기적 요소, 균열적 유소를 주목하면서 정책을 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이 당선자는 경부운하 문제를 환경운동세력과 소통하면서 폭넓은 여론수렴 작업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 이 = 만약 이회창 후보나 박근혜 전대표가 당선됐다면 남북관계에서 대립주의, 국내에서는 아마 신자유주의와는 좀 다른 노선을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는 것은 이념 스펙트럼에서는 중도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래서 큰 갈등의 요소는 상당히 줄었습니다. 그간 노무현 정부가 해온 정책 중 어떤 부분은 상당히 좌파적 색채가 강하고 어떤 부분은 한·미FTA처럼 신자유주의가 강합니다. 새정부는 이 유산을 아우르면서 2008년 체제를 만드는 대전환을 시도해야 할 텐데 여기서 관용의 정신이 중요합니다. 지난 10년, 5년간 추진된 정책을 일순간에 틀면 전환비용이 엄청나고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10년을 확 지울 수는 없기 때문에 가급적 비용을 줄이면서 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정부가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 조 = 한나라당은 노무현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규정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중도 자유주의 정부입니다. 이제 각축이 끝났으니까 그런 왜곡된 규정부터 바꾸면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거청산 문제만 하더라도 어차피 한번 짚고 갈 것이었기 때문에 털고 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이명박정부는 완전히 모든 것을 역전시키지 말고 노무현정부 하의 긍정적 요소는 수용하면서 우리 사회를 진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정리 = 김성훈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