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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62) 한길사 대표는 최근 대만 타이베이(臺北)를 방문하고 11일 귀국했다. 한국·일본·중국·대만·홍콩의 인문학 출판인들 30여명이 참여하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6개월마다 서울·도쿄(東京)·항저우(杭州)·홍콩·타이베이 등에서 모임을 갖는 이 회의의 취지는 책을 통해 동아시아의 사상·정신·이론 문화를 찾아보자는 것. 한국에서는 한길사를 비롯, 창비·사계절·일조각·돌베개·동아시아·지호 등의 출판사가 이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회의 참가 외에도 김 대표는 곧잘 외국을 방문한다. 해외 여행 때 그가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은 고서점. “여행을 통해 책을 구상한다”는 김 대표는 “7, 8년 전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을 여행할 때 ‘발행부수 20권’에 불과한 ‘신의 딸 프로방스’를 구입했다”고 소개했다. 처음엔 비싸서 구입할 엄두도 못 냈는데 프로방스를 여행할 당시 책이 서가에 그대로 꽂혀 있어 눈 딱 감고 구입했다는 것.

김 대표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매일 아침 7시쯤 일어나는 그는 헤이리 마을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길사가 있는 파주출판도시에서 오후 8시쯤 퇴근, 자정 무렵에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헤이리 예술마을은 김 대표가 12년 전 기획, 실행에 옮겨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난해 봄 이사장직을 사임하고 지금은 일반 회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올해 봄에는 북하우스를 완성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북뮤지엄 ‘윌리엄 모리스’를 개관하기도 했다.

출판사 대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가 언제 짬을 내 독서에 집중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 대표는 “사실 자유로운 독서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안타깝다”며 “우리가 기획하는 책을 검토하고, 우리가 펴낸 책들만도 읽어내기에 너무 많은 양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문학 서적들도 마음껏 읽고 싶지만, 불가피하게 인문학 책만 ‘검토하는’ 독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최근엔 한길사가 펴낸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비롯, ‘극단의 시대’(까치)를 다시 읽고 있다”며 “역사와 문명에 관심을 갖고 읽는 편인데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고 털어놨다.

한길사는 최근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의 ‘우리 고전을 찾아서’를 펴냈다. 이 책은 ‘이상의 도서관(Ideal Library)’이란 시리즈의 첫 권. “1970~1980년대에 ‘오늘의 사상신서’란 시리즈를 펴내는 데 주력했는데, 21세기에 요구되는 교양과 지성, 문제의식을 담아내기 위해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고 김 대표는 소개했다. 매년 20권 정도 펴낼 계획이다.

한길사는 또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의 ‘그리스 비극’을 최근 출간했다. “이런 훌륭한 책을 펴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김 대표는 “3년 전 임 교수의 ‘눈의 역사 눈의 미학’을 펴냈는데 이 두 저서는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저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한길사의 역점 사업 중 하나인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가 곧 100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을 집대성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한국 인문학 출판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