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시절 각 대기업 산하 경제연구소는 매년 환율 전망을 그룹 수뇌부에 보고할 때마다 혼쭐이 났다. 복잡한 각종 변수들을 넣어서 아무리 정교하게 전망치를 만들어도, 경영진이 정부로부터 통보받은 수치와 항상 달랐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위해 환율을 얼마로 하기로 했다’며 환율을 마음대로 조정했다.

정부가 압도적인 정보우위와 분석·축적 능력, 인재 풀 등을 바탕으로 이처럼 기업 등 국민경제 주체들을 지도하던 방식은 그야말로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정부는 최근 분기마다 각 대기업 산하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을 초청, 각종 경제정책을 상의한다. 대기업 관계자들과 비공식적인 의견교환의 장도 자주 마련된다.

이들 자리에서 수출증가율, 환율 변동치, 경제성장률 등 각종 경제 주요 지표들에 대한 정부의 전망치 등이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이어 각 대기업 경제연구소들의 예상치가 교환된다. 그 다음에야 정부는 비로소 고위관료들의 입을 빌려 관련 경제전망을 언론에 발표하는 수순을 밟는다.

◆ ‘경제 2.0’은 시대적 과제 = 정부와 기업, 개인 등 각 경제주체들의 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은 한국경제의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정부에 대해, 공급자가 아닌 사용자 중심의 ‘열린 경제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정책에도 웹 2.0으로의 변화가 본격화되고있다.

‘경제 2.0’은 정보를 개방하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의 참여를 통해 새로운 경제 가치를 만들어내자는 것으로, 국민경제차원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집단적 합리성을 추구하자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참여·개방·공유’를 위한 전제조건들 = 적극적인 해외진출과 대외개방은 ‘경제 2.0시대’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꼽히고 있다. 주도적인 시장개방을 통해 열린 경제를 추구해야 각 경제주체들의 참여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개입주의적 관행이 남아있는 정부를 더욱 시장친화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간 전문가들은 ‘경제 2.0시대’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 적극적인 시장개방을 통해 열린 경제를 추구하면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의 족쇄를 풀어줘야 하며 ▲정책소비자인 기업과 개인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정책시스템을 갖추고 ▲정치논리를 배제한 시장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 규제개혁이 핵심 키워드 =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가 민간부문에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개입을 중단하고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도 허용되는 항목을 열거해주는 포지티브 시스템을 빨리 허물고, 금지된 항목만을 제외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등 규제개혁 추진 체계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경제정책에 대한 참여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보접근과 분석도구의 강화에 따라 개인이 컨슈머(소비자)에서 벗어나 프로슈머(프로듀서+컨슈머)적 지위를 확보하고, 경제에 대한 정책제안과 비판에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대외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 국내의 경제력 집중을 거론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서 “해외 거대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환영하면서도,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는 제한하고 있는 현재 경제정책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밝혔다.

권선무기자 yoyo1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