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화하는 이상기후

소방방재청 산하 국립방재연구소는 가을 태풍이었던 ‘나리’(11호 태풍)가 12시간 동안 제주도에 쏟아 부은 최대 410.5㎜의 강우량이 1000년만에 한번 있을 폭우였다는 분석을 이달 초 내놓은 바 있다. 69년간 축적된 제주 강우량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1000년 이상에 한 번 꼴로 발생할 확률을 가진 것으로 계산됐다는 것이다.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이 발표는 곧 ‘앞으로 1000년간 그런 폭우는 오지 않는다’고 풀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난 2002년 태풍 루사는 강릉지역에 일최다강우량인 870.5㎜의 폭우를 퍼부었다. 연 평균 강수량의 60% 이상이 하루에 내린 셈이다. 루사로 인한 피해액은 국내총생산(GDP)의 0.9% 수준인 5조5000억원으로 파악됐으며 복구비용은 피해액의 1.5배 정도인 8조원이 소요됐다. 물론 국립방재연구소의 분석은 제주에 또다시 그런 폭우가 내릴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1000년에 한번 내릴 법한 폭우가 좁은 한반도에 5년 만에 다시 내습할 정도로 최근 기상이변은 과거 자료만을 바탕으로 해서는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해졌다.

흔히들 기상이변이라고 하지만 수년간의 데이터를 보면 이변이 아닌 고착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름장마는 옛 말이고 이젠 가을장마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같은 서울지역에서도 어떤 곳은 폭우가 쏟아지는가 하면 어떤 곳은 해가 쨍쨍 나는 게릴성 호우가 빈발하는 것도 이젠 일상이 됐다. 장마 이후 뒤늦게 더욱 강한 비가 내리는 현상에 대해 기상전문가들은 가을에도 제주도 해상 해수면 온도가 예년보다 섭씨 0.5~1도 높은 28도를 유지해 태풍의 세력이 한반도에 이르러서도 약화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온대지역이었던 한반도는 이제 빠르게 아열대화하고 있다. 기상청 권원태 기후팀장은 “일반적으로 월 평균 기온이 섭씨 10도 이상인 기간이 8개월을 넘을 때 아열화 기후로 정의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현재 제주도는 물론 남해안 일부지역도 아열대 기후에 해당한다. 차츰 북상하고 있는 한반도의 아열대선은 앞으로는 더욱 빠르게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온난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자연적인 것인지, 인위적인 것인지 기상학자들이 아직 논증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상기후가 이제 1000년 만에 한번 발생할 이변이 아니라 앞으로 빈발할 소지가 높은 새로운 현상이라면 사회 전체의 방재시스템 차원을 그에 맞추는 것이 시급하다. 과학자들은 기온이 2~3도 상승하면 생물종의 20~30%가 멸종할 것이라는 ‘기후재앙’을 전망하기도 한다. 과거 통계를 기준으로 마련된 현재 방재시스템을 믿고 있다가는 기후재앙을 피하기 힘들다. 농업, 수자원, 건설은 물론 도로, 교량, 하천 등 사회기반시설도 일강우량 800㎜라는 새로운 기후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

도시 정비나 국토 개발 역시 새로운 기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태풍 나리의 피해가 막심했던 것은 기록적인 강우량도 있지만 하천 중간부분을 복개하면서 물의 흐름을 차단했고, 또 최근 한라산 산간지대까지 들어서고 있는 골프장과 관광시설 등이 그동안 빗물을 흡수해 홍수를 방지해 주었던 화산지대를 틀어막았기 때문이라는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주장은 섣불리 흘려들을 일이 아닌 것 같다.

이와 함께 기상청의 예보 능력과 정확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기상청이 2004년 도입한 슈퍼컴2호는 연산처리 능력이 18.5테라플롭스(1테라플롭스는 1초에 1조번의 연산능력을 의미)로 기상컴퓨터로는 세계 4위다. 그런데도 최근 예보 정확성이 떨어져 국민의 원망을 듣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부가 실시한 ‘기상청 예보역량 진단 평가’ 컨설팅 결과에 따르면 예보관의 역량과 예보 시스템, 날씨예보 데이터를 산출하는 프로그램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보관의 체계적인 육성대책과 선진국에 버금가는 날씨예보 소프트웨어 확보에 많은 예산을 편성할 충분한 필요가 있다.

[[이동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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