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시름 다 감추고 나처럼 웃어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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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태극을 그리며 마을을 휘감아 돈다. 산은 물을 얼싸안고 물은 산을 휘감아 돌아 절묘한 지형을 빚어내고 있는 안동의 하회마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 사람들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한국인의 웃음을 만난다.

하회탈의 웃음은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 신라 막새기와에 새긴 천년의 미소, 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소라 할 수 있다. 하회탈은 하회마을에서 별신굿을 할 때 사용했던 목재 탈이다. 고려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제121호의 하회탈에는 허 도령에 관한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허씨들이 하회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 당시 마을에는 원인 모를 우환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허 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탈을 만들어 춤을 추면 마을의 재앙이 없어진다고 했다. 다만 탈을 만드는 것을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허 도령은 곧바로 마을 어귀에 움막을 짓고 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허 도령을 사모하던 마을 처녀가 안타깝게도 탈막으로 찾아가 허 도령을 몰래 엿보고 말았다. 결국 허 도령은 피를 토하며 죽게 되고, 처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서낭당을 짓고 매년 동제를 올리며 서낭신으로 모신 처녀의 넋을 위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하회별신굿의 원형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에 등장하는 탈은 각시탈, 백정탈, 할미탈, 이매탈, 초랭이탈, 중탈, 부네탈, 양반탈, 선비탈, 주지탈 등 10종이다. 탈들은 각기 특색 있는 얼굴과 웃음을 지니고 있다. 양반과 선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평민들의 삶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탈놀이를 보고 있노라면 배꼽 잡고 웃지 않을 수 없다.

양반탈은 하회별신굿 탈놀이 넷째과장에서 양반 역이 쓰는 가면이다. 하회탈을 대표하는 양반탈의 미소는 밝고 맑으며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고 있다. 가면미술의 극치라는 평을 받고 있는 양반탈은 고개를 젖히면 박장대소하는 표정이 되고 고개를 숙이면 입을 꾹 다문 화난 표정으로 변한다.

다소 거만한 느낌을 풍기는 선비탈은 도끼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습에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항상 불만에 차 있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백정탈은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에서 천민의 힘든 삶을 엿볼 수가 있고, 중탈은 계율을 어기고 파계한 인간으로서 능청스러움과 엉큼함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매탈은 허 도령의 전설 내용처럼 미완성의 작품으로 턱이 없이 전해지고 있다. 선비의 하인 역으로 바보탈이라고도 한다. 이매탈의 표정은 너무나 맑고 순박하며 걱정 하나 없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처럼 사람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하회탈은 뜨거운 열정의 춤꾼과 장인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 보존회(회장 임형규)는 하회마을 솔밭공원에서 매주 상설공연을 펼치고 있으며, 허 도령의 혼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하회탈의 장인 김동표(55)씨는 진품 탈과 꼭 빼닮은 하회탈을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지난 1999년 안동을 방문했을 당시 김씨로부터 하회탈을 선물 받았다. 오는 8일에 국빈 방한하는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도 안동의 하회마을을 찾는다. 이번에도 김씨는 여왕에게 하회탈을 선물하기로 되어 있다.

전통과 위엄을 자랑하는 유럽 왕실의 여왕들이 하회마을을 방문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이곳이 동양의 정신과 혼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분들의 사려 깊은 관심과 애정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오롯이 살아있음을 느끼니 가을의 풍요로움을 얻은 것 같아 뿌듯하기만 하다.

사진·글=moon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하회탈은 제작과 표현기법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가면미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탈은 상하 좌우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인간의 희로애락이 탈 모습에 깊게 농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