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국 위성방송 스카이TV는 전직 백악관 영사기사인 폴 피셔의 말을 인용해 역대 미 대통령들이 좋아한 영화에 대해 보도한 바 있는데 현 부시 대통령의 경우 치열한 전투신이 나오는 ‘블랙호크 다운’과 같은 전쟁영화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부시 대통령은 실감나는 전투신에만 빠져들었는지 모르겠지만 1993년 10월3일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벌어졌던 실제 전투 상황을 다룬 이 영화는 진한 감동을 주는 메시지를 여운처럼 남긴다.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하고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블랙호크 다운’은 미국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에서 20여년 동안 활동한 저널리스트 마크 보든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했다. 보든은 목숨을 걸고 현장을 답사하고 전투에 참가한 대원들을 인터뷰해 쓴 ‘모가디슈의 전투’라는 기사로 해외 프레스 클럽의 ‘할 보일’상을 받았다. 그는 1999년 이를 바탕으로 ‘블랙호크 다운 - 현대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그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선두에 올랐다.

소말리아의 군벌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의 고위 보좌관 2명을 납치하는 ‘간단한 작전’에 미군 특수부대원 99명이 모가디슈에 투입되는 데 블랙호크 헬기 2대가 차례로 추락하면서 일이 꼬인다. 조종사를 구하려다 수 천명의 소말리아 민병대의 공격을 받은 대원들은 베트남전 이후 미군이 체험한 가장 길었던 전투에 휘말려 18명이 전사하고 70명 이상이 중상을 입고 상황은 종료된다.

너무나 리얼한 전투신을 보면서 가슴에 와닿은 메시지는 ‘단 한 명의 전우도 남겨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hind)’는 미군 레인저의 신조가 상징하는 전우애와 희생정신이었다. 부상당한 전우는 물론 시신까지 수습해 오는 레인저의 신조는 영화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국방부 산하에 ‘전쟁포로 및 실종자 담당처(JPAC)’를 두고 전세계에서 미군 실종자 및 유해를 찾기 위해 매년 1억400만달러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JPAC는 북한과도 유해 송환협상을 맺고 벌써 반세기가 지난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해 많은 보상비를 지급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지난달부터 4년 전 유엔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동티모르에 파견돼 임무수행 중 실종된 상록수부대원 고(故) 김정중 병장의 유해를 찾기 위한 활동을 재개했다. 김 병장은 2003년 3월6일 오쿠시 지역 에카트 강을 건너다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함께 순직한 다른 4명 장병의 유해는 현장에서 발견됐지만 김 병장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고 상록수부대가 그해 10월 철수해 유해 발굴작업도 중단됐다. ‘남겨둔 전우’의 유해를 찾겠다는 국방부의 결정은 뒤늦긴 했지만 당연한 것이다. 지난 5월2일 노무현 대통령이 군 작전 및 해외파병 유가족을 초청한 간담회에서 김 병장의 형 김하중씨가 “동생이 죽고나서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린 이후 발굴작업이 재개된 점은 찜찜하기는 하지만.

10월2일부터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의 송환문제가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국방부는 한국전쟁 이후 미귀환 국군포로를 1만90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아직 500여명이 생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994년 조창호(2006년 사망) 중위 이래 60여명의 국군포로가 탈북에 성공했지만 한국 정부 차원의 배려로 돌아온 예는 없다. DJ정부 이후 지금까지 북한에 지원한 돈은 8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면서도 북에 국군포로 송환과 관련, 한 마디 요구도 못하는 것은 지나친 대북(對北) 저자세가 아닌가.

병역기피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사이트가 100여개나 되고 회원 수도 30만명이 넘는다고 국회 국방위 소속 맹형규 한나라당 의원이 26일 밝혔다. 이 중에는 면제 컨설팅을 해주고 돈을 받는 병역브로커까지 있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거나 포로가 된 ‘전우’를 되찾아오는 데 무신경했던 것이 병역 의무가 희화화된 한 요인은 아닐까.

[[이동윤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