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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TV는 왕들이 호령한다. 방영이 수차례 연기되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블록버스터 ‘태왕사신기’(MBC)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고 ‘여인천하’ ‘용의 눈물’ 김재형PD와 ‘허준’ ‘대장금’ 이병훈 PD의 대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왕과 나’(SBS)와 ‘이산’(MBC)이 월화드라마의 패권을 놓고 격돌하고 있다. 스타와 스타, 스타 PD 대 스타PD의 기싸움이 곁들여진 TV 왕들의 대전이 뜨겁다.
◆왕과 나 =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 ‘별난남자 별난여자’에서 조연을 맡았던 신인 고주원(25)이 성종을 맡았다. 아역배우들을 제외하고는 격돌 왕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이 드라마에서 어린 시절 성종을 연기한 유승호가 ‘태왕사신기’에서 광개토대왕을 맡은 배용준의 아역이기도 해 ‘왕 2관왕’을 차지했다.
왕과 그를 보필하는 내시들의 세계를 조망하는 ‘왕과 나’는 성종과 내시 김처선(오만석), 폐비 윤씨(구혜선)가 삼각관계라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사극의 원조’ 김재형 PD가 금품수수 파문을 뒤로 하고 재기를 다짐하며 준비한 작품. 왕을 보필하는 내시들의 내밀한 생활을 그리면서 차별화를 선언했다. 9회까지 진행된 현재 시청률 25%를 기록하면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동시에 역사 왜곡 논란이 가장 뜨거운 작품이기도 하다. 예종이 권력을 쥐려는 내시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묘사되고 성종이 한명회의 딸과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왕위에 오른다. 이밖에 문종 때 내시 김처선이 성종 때 입궐하고 성종보다 12세 연상이었던 폐비 윤씨가 성종과 같은 또래로 그려진다. 이밖에 내시들의 생활사는 전적으로 픽션. 내시지만 엄청난 권세를 누리는 조치겸(전광렬)은 허구의 인물이며 내시들이 거세된 양물이 담긴 항아리를 들고 왕 앞에서 시위를 하는 장면 등은 모두 꾸며낸 이야기다.
일정부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국과 고려시대 환관과는 달리 조선의 내시들은 정치적 역할이 철저히 차단됐다는 것이 정설.
◆태왕사신기 = 배용준이 환웅과 광개토대왕 1인 2역을 맡는다. 오픈 세트 제작비용을 포함해 24편을 만드는 데 총 400억원을 들인 대작으로 기존의 사극과는 어쨌든 ‘때깔’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욘사마’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은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그린 이케다 리요코가 만화로 연재를 시작한다. 제작사에 따르면 ‘태왕사신기’는 일본 등 해외 판권 판매로 이미 300억원 상당의 수입을 올려 차세대 한류 상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사극이라기보다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팬터지에 가깝다.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웅족의 여인 새오(이지아), 호족의 신녀 가진(문소리)의 사랑이 펼쳐지며 2000년 후 환웅이 환생한 것으로 설정된 광개토대왕이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행적이 전개된다. 왕족이 하늘의 힘을 차지할 수 없도록 막는 임무를 가진 비밀결사대 ‘화천회’나 물과 불, 주작 등을 부리는 주술사들 등 ‘신기한 이야기들’이 볼거리.
시청자들의 반응은 “기존 사극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와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따라가기 벅차다” 등으로 다소 엇갈린다. 컴퓨터 그래픽(CG)으로 공을 들인 화면에 대해서도 ‘낯설다’ ‘새롭다’ ‘만화 같다’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방영 2회(12일) 만에 시청률 23.7%를 기록하면서 신드롬 조짐도 보이고 있다. ‘대망’(2002년)으로 색다른 사극을 시도했으나 시청률 측면에서는 ‘쓴맛’을 본 김종학·송지나 콤비가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
◆이산 = 첫회(17일)에서 어린 시절의 정조대왕을 연기한 아역배우 박지빈이 뒤주에 갇힌 아버지 사도세자 앞에서 서럽게 우는 장면이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왕과 나’가 시청자를 선점한 상황에서 첫회 시청률 13%를 기록했다. 앞으로 도회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의 이서진이 조선왕조의 가장 탁월한 임금을 설득력있게 그릴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불같은 성품의 영조를 맡은 이순재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왕으로 등장한다. 대신들 앞에서 탁월한 행정 지식을 과시하며 불호령하는 모습으로 기선을 제압한다.
의술, 요리, 상업 등 기존 사극이 간과한 부분을 안방극장으로 불러와 사극의 한 경향을 만들어낸 이병훈 PD가 20년 만에 꺼낸 ‘왕의 이야기’라는 점도 눈여겨 봐야할 대목. 왕의 이야기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궁중의 암투가 아닌 ‘전문적인 식견과 지식을 가진 이 시대에 필요한 군주상’을 그린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정조의 면모를 그린다는 기획 취지에 따라 제목도 그의 본명인 ‘이산’으로 정했다. 한지민이 정조가 평생을 사랑한 여인 성송연(의빈 성씨)으로 출연하고 이종수가 한평생 정조를 그림자처럼 지키는 호위 무사 박대수를 맡았다.
전영선기자 azulid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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