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28일엔 인도네시아, 이달 3일까지는 말레이시아, 6~8일엔 중국으로, 제각기 다른 목적 때문에 짧지만 의미있는 출장을 다녔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는 일본 기업에서 일하는 현지인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를 위해 갔다. 1992년에 실시했던 조사 이후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현지인 종업원들을 인터뷰, 15년 전에 던졌던 것과 같은 질문을 해 어떻게 대답이 변화했는지를 조사하는 동안 몇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일본인 주재원과 현지인 종업원의 관계가 과거엔 교사와 학생 같은 관계였는데 지금은 중립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것. 과거에는 일본인들이 현지인들에게 기술과 경영수법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측면이 강했지만 15년 동안에 현지 종업원들은 착실히 성장해 그런 관계를 이젠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현지인 종업원들이 일본인 젊은 직원들을 훈련시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둘째, 현지 종업원들이 일본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라는 일본인의 이미지는 이젠 많이 가신 반면, 근면하다는 이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시대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한 동시에, 이미지라는 것이 그만큼 변하기도 쉽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셈이다.
세번째는 현지 종업원들 사이에서도 능력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주도적이 됐다는 것. 1990년대에도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큰 문제이기는 했으나,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진행돼 다국적기업이 많이 진출한 지금은 기업에서 유능한 인재를 찾아내는 능력이 곧 업적을 평가받는 기준이 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고용안정성 면에서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비교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글로벌화가 진전되고 인재들이 이리저리 옮아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고전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진출해있는 한국 기업들의 사례와 관련해서는 상세한 연구를 진행하지 못했으나 일본 기업들과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그런 변화는 15년이라고 하는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은 대상을 조사했기 때문에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학술회의 참석차 방문했는데 거기서도 시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회의 뒤 회식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려 하는데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 보였다. 중앙전시대(中央電視台·중국 국영방송국)의 인기 프로그램 ‘동방시공(東方時空 Oriental Horizon)’의 캐스터를 오랫동안 하다가 지금은 상하이(上海)의 TV 방송국으로 옮아간 팡훙진(方宏進)이었다.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동방시공’의 캐스터를 그만둔 것이 뉴스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그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지금부터 23년 전인 1984년에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알게 돼 대학원에서 서로 말을 트고 지냈던 사이다. 이쪽은 언제나 그의 모습을 TV에서 보아왔으니 금방 알아볼 수 있었으나 그쪽에서는 필자를 곧장 알아보기가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흰머리가 늘고 체형이 바뀐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을 것이다.
먼저 서로의 기억을 불러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제각기 지난 23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다가 문득 그의 숨겨진 일면을 보게 됐다. 그는 1989년 6월4일 텐안먼(天安門)사태 뒤 당시 근무하고 있던 선전(深?b)대에서 심한 비판을 받고 도망치듯 나와 방송계에 들어섰다.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았는데 그것이 ‘사회파(사회참여) 방송’의 인기 캐스터를 탄생시킨 배경이 됐다고 하니 재미있다.
현재 중국의 미디어는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미디어는 정부의 공식 견해만 내보내는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벗어나 기자가 스스로 취재에 바탕을 두고 보도와 논평을 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청자들에겐 익숙한 그런 스타일로 이행하기 시작하는 상황에 와있다. 공산당의 일당지배는 달라지지 않았으나 후진타오(胡錦濤) 정권의 미디어 통제는 과거보다 완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 한편에서 팡 같은 저널리스트들이 착실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얼핏 보기엔 별로 변화하지 않은 것 같은 현상도, 긴 간격을 두고 지켜보면 변화가 포착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미디어는 15년 뒤에는 어떻게 변화해 있을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일본기업들처럼 긴 시간에 걸친 변화를 추적해보려면 가능한 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서 오래오래 살면서 지켜보는 수밖엔 없겠다. 변화를 지켜보고 느끼는 것만 해도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노다 시게토 /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