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말에 내놓은 4년임기 연임제 대통령제로의 헌법개정 제안은 그 내용, 시기, 정치도의적 측면에서 합리성과 정당성을 결하고 있어 즉각 중단돼야 한다. 국민의 뜻이 모아지는 차기 어느 정권하에서의 논의에 맡겨야 한다.

첫째로 5년 단임제 임기가 짧아서 책임정치, 정책추진의 일관성·연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역량과 비전 및 책임감이 투철한 인물일 경우에 해당된다.

무능 또는 부패하고 책임감이 결여된 대통령이라면 5년이 얼마나 답답하고, 또 사고치기에는 얼마나 긴 시간인지 우리가 직접 체험하고 있다. 내각책임제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할 정권을 대통령제 하에서 확실하게 물러나게 하는 장치는 짧은 임기의 단임제다. 연임제는 무능 또는 부패, 무책임한 대통령이 첫 임기 내내 연임을 위한 정치술수에만 매달리게 할 유인을 준다.

단임제는 오히려, 어차피 한 번밖에 못하는 대통령이니까 역사의 기록을 의식하고 대선에서 신세진 ‘코드’세력들로부터 독립해 나라 전체의 대통령이 되게 하는 유인을 줄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다.

원래 재주없는 사람이 연장 탓하는 법이다. 어떠한 제도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것은 운영하는 사람의 자질이다. 미국 대통령제가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간선제 때문이 아니다. 국민 전체투표에서는 다수를 차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플로리다주에서의 사소한 기술적 패배로 고어가 부시에게 깨끗이 승복한 3년전의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그 좋은 예를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국민과 정치인들의 자질, 정치문화를 높이는 일이 더 없이 중요하다.

둘째로, 명분이 아무리 좋더라도 우선 시기가 문제다. 사태의 전개에 따라서는 불벼락을 뒤집어쓸지 모르는 북핵위기·전시작전통제권전환문제로 부각된 안보위기, 경제살리기, 행정중심복합도시이전, 지방균형발전, 국가부채증가, 부동산버블, 교육의 위기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급박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온 국민의 정신을 사로잡게 하는 대선을 치르게 돼있다. 격앙된 논의와 국론분열을 불러일으킬 것임에 틀림없는 헌법개정을 과연 올해 해야 할 시점인가.

적어도 이성을 가진 국민이라면 지금은 전혀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다. 시점으로 말하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국가 전체의 장래를 위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고 인기를 회복함으로써 임기를 아름답게 마무리짓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셋째로, 비록 대통령이 헌법개정제안권을 가지고 있긴 해도, 국민의 지지도가 10%정도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이나 여당이 그 제안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운영을 어떻게 했기에 지지도가 이렇게 떨어졌는지를 자문하고 반성해 더 잘 하도록 전력하지 않고, 정치도의상 무슨 염치로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헌법개정 제안을 하는가.

국민에게 비전과 역량을 보여주고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대통령이 5년의 임기가 참으로 짧아 부국강병의 뜻을 다 펴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안하는 대통령 4년임기 연임제 제안이라면 분명히 설득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극심한 국론분열 상황, 바닥의 지지도, 빈약한 명분, 야당의 반대로 개헌 실현 가능성 부재에도 불구하고 내놓는 헌법개정제안은 여당 자체의 분열을 막고 야당을 혼란케 만드는 등 정국을 또 한번 주도하려는 면밀한 계산하의 ‘깜짝쇼’ 수준의 정치술수라고 밖에 달리 판단되지 않는다.

[[최대권 / 서울대 명예교수·한동대 석좌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