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덩치 극복하려 키운 팔힘이 최고 무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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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봄 대한유도대학 유도학과에 신입생 50명이 입학했다. 이중에는 172㎝의 보통 키에 체중도 65㎏밖에 나가지 않는 신입생이 있었다. 유도에 걸맞지 않은 왜소한 체격의 그 신입생은 실기성적도 50명중 거의 최하위였다.

유도대학 61학번이 군대를 다녀와 졸업할 무렵인 1965년 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는 브라질 세계유도선수권대회 파견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당시 국내 유도는 재일동포 선수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배운 그들에게 국내파는 판판이 넘어갔다.

헤비급 결승전, 매트 한쪽에 체중 130㎏의 거구인 재일동포 신웅건이 우뚝 서 있었다. 상대는 국내파로 키도 작았고 체중도 90㎏이 넘어 보이지 않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형국이었고 그때까지 신웅건을 꺾어 본 국내파도 없어 누구나 몇 분만에 신웅건이 한판승을 거둘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다윗은 짧지만 힘이 넘치는 팔로 골리앗을 견제하고 있더니 얍! 하는 기합과 함께 상대의 팔을 당겼다. 전광석화와 같은 빗당겨치기였고 거구인 신웅건이 매트에 떨어졌다. 대이변을 일으킨 선수는 바로 유도대학 61학번 중 최하수로 간신히 입학했던 그 학생, 김정행(63)이었다.

김정행은 대학 졸업 후인 1967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라이트헤비급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지금이야 유니버시아드대회 메달 정도는 신문에 한 줄 나기도 힘들지만 당시 김정행의 은메달 획득은 종합지에서 호외를 발행했을 정도의 ‘쾌거’였다.

꼴찌 입학생에서 최연소로 9단에 승단(2002년)하고 한국유도는 물론 아시아 유도의 수장으로 입지를 다진 김정행 대한유도회 회장 겸 용인대 총장을 지난달 21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캠퍼스의 총장실에서 만났다.

떡 벌어진 어깨에서 한눈에 무도인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김 총장은 첫마디부터 두산그룹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박용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걱정을 했다. “평창이 2014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각국 IOC위원들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박 위원의 복권이 시급합니다.

IOC는 현재 박 위원을 임시 자격정지시켜놨는데 이는 복권만 되면 자격을 회복시키겠다는 신호지요. 스포츠 외교를 아는 분이라면 일국의 IOC위원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겁니다.

유도인 출신 IOC위원만 해도 아일랜드의 하키(유럽 IOC위원회 위원장), 코트디부아르의 할렌포(아프리카 IOC위원장), 네덜란드의 헤싱크 등 세 분이나 됩니다. 그리고 그간 박 위원이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 놓은 위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박 위원의 복권은 한국스포츠 재도약의 기회라고 나는 단언합니다.”

김 총장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중학생 때 체격은 크지 않았지만 선천적으로 힘과 순발력이 좋고 테크닉을 빨리 익히는 스타일이었던 그는 태권도를 먼저 시작했다(김 총장은 76년 태권도 5단으로 승단했다). 유도에 빠져든 것은 포항중 3년때 초대 포항시장을 지낸 문달식씨가 개설한 유도관에 다니면서부터.

예절을 중시하고 선후배 관계가 깍듯한 유도가 무작정 멋있어 보였고 당시 유도 6단의 고단자이자 인격자였던 문달식씨를 흠모해 “나도 커서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포항 동지고에서 대구 대건고로 전학한 것도 본격적으로 유도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유도 명문 대건고에서는 실력이 부족해 큰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김 총장은 포항에서 운수업과 어업을 했던 유족한 집안의 6남매 중 장남이자 외아들이었다. 유도에 뜻을 두고 유도대에 입학하겠다고 하자 상과대에 들어가 가업을 잇기를 바랐던 집에선 난리가 났다.

우여곡절 끝에 유도대에 들어간 그는 ‘입학은 꼴찌로 했지만 반드시 학교에 남겠다’는 뜻을 세웠다. 당시 유도대는 동기생 중 가장 실력 있는 2명을 교수요원으로 선발하는 전통이 있었다.

“65㎏의 빈약한 체구에 팔까지 짧은 내가 뜻을 이루기 위해선 훈련밖에 없었죠. 남들의 두 배는 하겠다는 의지로 버텼지요. ‘초지일관’이 내 좌우명이었죠.” 팔이 짧은 그가 덩치 큰 선수를 이기려면 우선 붙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 팔 힘을 키우기 위해 벤치프레스와 고무줄 당기기, 그리고 산악훈련에 매달렸다. 금속 바벨이 없을 때라 돌 역기를 들었다. 동기들이 10개를 들면 40∼50개를 들었다.

“62년 선수로 육군에 입대해 수색의 국방대학원에서 근무했는데 보초근무를 할 때도 M1소총으로 팔운동을 했어요. 무게 4.37㎏의 소총을 1시간 내내 당겼다 폈다 하는 운동을 하고 나면 나중엔 내 팔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어요.

” 대학 졸업반 무렵 김정행은 라이트헤비급(93㎏급)선수로 뛰었으니 4년간 무려 30㎏의 근육을 몸에 붙인 셈이다. 약점을 커버하기 위한 팔 힘 키우기가 김정행의 최고 무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의 주무기는 몸통과 팔을 동시에 돌리며 원심력을 이용하는 빗당겨치기와 안뒤축걸기. 호쾌한 기술이어서 걸리기만 하면 무조건 한판에 끝냈다.

동기생 신석기(미국 오마하대 교수)와 둘이 염원하던 교수요원이 되어 학교에 남은 김정행은 71년까지 3차례 세계선수권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각국이 2명씩 출전하는 세계선수권보다는 1명씩만 출전하는 올림픽 메달이 훨씬 쉬웠지만 그는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64년 도쿄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됐던 유도가 그의 전성기였던 68년 멕시코대회에서는 제외됐기 때문.

하지만 김정행은 94년 대한민국 유도인구의 80%를 배출한 용인대(대한유도대학의 후신)의 2대 총장으로 부임해 지금까지 4연임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이 나와 같이 4연임했는데 우리 학교는 숙대와 달리 정년이 돼도 임기를 보장하기 때문에 16년간 총장을 하는 것은 아마 ‘한국 신기록’일 겁니다”라며 껄껄 웃는 김 총장은 “체육을 특성화한 전략이 적중해 학교 발전에 이바지한 것이 재단측의 신임을 받은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행 유도회장은 누구…

▲1943년 경북 포항 출생 ▲대구 대건고(61년 졸업) - 대한유도대학(65년) ▲65년 동 대학 조교 - 조교수(76년) - 부교수(81년)를 거쳐 86년 교수 ▲81년 동 대학 학생처장 - 90년 대한체육과학대학 기획실장 - 92년 부총장 겸 기획실장을 역임한 후 94년 용인대 2대 총장 취임. 현재까지 4연임 ▲건국대 행정대학원 교육행정학과(76년·교육학 석사), 중국 성도대 명예 체육학박사(92년), 경기대 명예 행정학 박사(92년), 일본대 이학박사(97년 스포츠의학 전공), 몽골 체육과학대 명예 체육학박사, 대만 국립체육학원 명예 이학박사(이상 2001년)
▲76~81년 국가대표 유도감독, 82~88년 대한유도회 경기이사, 92년 대한유도회 부회장, 95년 대한유도회 회장 ▲86년 국제유도연맹(IJF)국제심판, 아시아유도연맹 경기위원장 및 IJF 경기위원, 2000년 아시아유도연맹 부회장, 2006년 아시아유도연맹 회장 ▲2002년 대한체육회 회장직무대행, 2005년 대한체육회 부회장 ▲2002년 유도 9단 승단 ▲87년 대한민국체육상 지도자상, 92년 체육훈장 백마장, 98년 청룡장, 2002년 IJF 은메달, 2003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훈장 은장 ▲78년 중매로 결혼한 조명자(55)씨와 1남1녀

체육부장 dylee@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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