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는 아이들을 위해 설빔이라도 사줄 생각입니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P보안경비업체에서 경비지도사로 일하는 이강(46)씨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씨는 “지난 2년여동안 신용불량으로, 또 실직으로 인해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지 못해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었다”며 “올해에는 아이들에게 설빔을 사주고, 차례상도 제대로 차려야겠다”고 말했다.

3년전만해도 이씨는 잘 나가는 육군 장교였다. 지난 1981년 3사관학교를 거쳐, 육군소위로 임관됐던 이씨는 지난 22년동안 직업군인으로 생활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관사에서 생활해 남들처럼 집값 걱정을 하지 않았고, 군의 학비보조 등으로 자녀 교육비 걱정도 없었다. 3~4년간 착실히 돈을 모아 전역한 뒤 동 예비군대대장을 할 생각이었다.

“시련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더군요.” 지난 2003년 5월 이씨는 자신의 월급이 가압류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알아보니 아내(45)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중학생용 인터넷 교육콘텐츠사업을 한다며 빚을 내서 컴퓨터 서버 등 각종 기기를 구입했다가 사업이 부진하자, 급기야 이씨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돌려막기를 했던 것. 이로인해 이씨는 5개월뒤 신용불량정보 보유자(옛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씨는 매일 걸려오는 빚독촉 전화에 시달리던 끝에 중령을 끝으로 22년간 입었던 군복을 벗고 퇴직금을 받아 빚의 일부를 갚았다.

“아내가 날 속였다는 배신감에 법원에 이혼서류를 접수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불행을 나눠주면 안되겠다 싶더군요.” 이씨는 두 딸과 아들을 위해 아내를 용서해야 했다. 그러고는 둘째딸이 다니던 보습학원을 인수해 학원 경영에 나섰다. 하지만 학생들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강사들 월급마련조차 어려워지면서 빚을 갚겠다는 생각은 물거품이 됐다.

빚은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뗄 길이 막막해졌다. 하루에도 몇번씩 걸려오는 빚독촉 전화로 인해 직장을 구할 엄두도 내기 힘들 만큼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이씨는 그러던중 지난 2004년 9월 우연히 신용회복위원회를 알게 됐고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다행히 매월 수령하는 군인연금 140만원의 절반을 96회 납부하는 조건으로 신용회복지원을 승인받고 지긋지긋했던 ‘신용불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씨는 이후 1년동안 일용직 등으로 생활하다 지난해 8월 작은 보안경비회사에 취직해 재기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제 저도 고정적인 월급을 받고, 아내도 보험설계사로 돈을 벌고 있으니 금방 일어설 수 있을 겁니다. 오랜만에 설 분위기가 납니다.” 이씨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홍성철기자 redho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