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정세균의원이 선출된 데 이어 3월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강재섭 의원이 당선되자 정치권에선 ‘이제 국회에도 순풍이 불겠다’는 전망이 나왔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한 인물들이 여야 원내 사령탑에 오름에 따라 국가보안법 등 여권의 ‘4대 개혁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국회가 차갑게 얼어붙었던 지난해와는 좀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불참할 정도로 격한 여야 대치는 올해도 반복됐고, 그에 따라 두 사람의 명암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30일 강 대표의 자진사퇴를 지켜보며 한 여당의원이 내뱉은 “합리론자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는 토로는 씁쓸하기 그지없다.

올 한 해 동안 정 대표의 주가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여권의 숙원이었던 행정도시건설법과 과거사법 등을 야당과 합의처리한 데 이어 지난 10월말 문희상 전 당의장의 사퇴 이후에는 당의장과 원내대표를 겸직하며 ‘집권여당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정 대표는 특히 당의장에 오른 뒤 쌀협상 비준안과 사립학교법 개정안까지 처리했고,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여당이 처리하고자 했던 핵심현안은 거의 다 처리했다.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면서 그의 정치적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108 번뇌당’이라는 악평을 얻을 만큼 중구난방이었던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원내대표를 한 번 더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당내 신임이 두터워졌다. 경제부총리나 산업자원부 장관 등으로 입각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제 그를 ‘큰 정치인’의 반열에 올려놓는 사람도 늘고 있다.

반면 강 대표의 2005년은 즐거움 보다는 고통이 많았다. 여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상생 정치’를 실현하는 듯했으나, 연말 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강행처리라는 악재로 인해 급기야 원내대표에서 중도하차 하기에 이르렀다. 여야 대치가 격해지면서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내 강경론에 밀려 자신의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 대표는 ‘아무리 여야가 대립해도 국회를 버려서는 안된다’며 병행투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강 대표는 여당이 여야 관계를 극한 대립으로 몰고갔다며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30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사퇴의사를 밝히며 “여당이 ‘꼼수 정치’와 ‘광란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정치가 소비자인 국민을 중심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내대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대권주자로 부상하려던 강 대표의 계획에도 적지 않은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계급장 붙일 때보다 뗄 때 더 홀가분하다”며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오남석·심은정기자 green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