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속엔 의외로 많은 이야기가 담길 때가 있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 자료를 곰곰 들여다보니 우리네 자화상이 제법 솔직하게 투영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출산파업, 이혼율 급증, 그리고 고령사회의 가속화로 인한 파장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명실 공히 ‘우발적 다원주의’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가족 삶의 다원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이 눈에 뜨인다.

35년 만이라던가, 드디어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를 추월했다고 한다. 이는 물론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평균 7세가량 높음을 반영하는 바, ‘홀로 되신 부모님들 모임에 가보면 할아버지 한 분에 할머님이 일곱 분이나 된다’는 이야기가 그저 웃자고 하는 농담만은 아님을 실감케 한다.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가 2.9명을 기록했다는 보고도 눈길을 끈다. 부부＋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을 기준으로 할 때 10집이면 1집은 자녀가 없다는 이야긴데, 가구원 수를 세대별로 다시 분류해보면 노인층과 미혼남녀 사이에서 단독가구의 증가가 확연하리라 예상된다. 덧붙여 이혼율 증가로 인한 이른바 ‘돌싱’(돌아온 싱글)의 증가도 가구 수 감소에 한 몫 했으리라 추측되며, 신세대 부부를 중심으로 “손주를 낳아드릴까요” 하고 시부모님과 거래한다는 ‘신손자(孫子)병법’과 더불어 출산파업이 여전히 강도높게 진행되고 있음 또한 쉽게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러고 보니 단순한 통계 수치 너머로 노인들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듯하고, 청년실업의 고통과 경기침체로 인한 불안감이 배어나오는 듯도 하다.

한국의 농촌은 인구에 관한 한은 우리의 10년 후 자화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현재 농촌의 고령화 비율이 20%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 더불어 초고령 노인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린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노인(며느리)이 노인(시어머님)을 수발해야 하는 부담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성문제’적 속성을 배제하고선 노인문제 해결이 요원함을 시사하는 중요한 지표라 하겠다.

특히 우리네 경우 여성의 경제력이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부모님을 모신 마지막 세대면서 자녀로부터 버림받기 시작한 첫 세대”가 어느덧 칠십 고개를 훌쩍 넘었을 듯한데, 이들의 노후가 더 이상 초라해지지 않도록 실종된 우리의 부양의식도 다시금 반성해보고, 부양이 부담으로 직결되는 ‘일 중심, 가족 소외’ 시스템을 전환하여 부양이 신성한 책임과 즐거운 의무로 인식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노후 부양의 안정적 기반 마련은 물론 기본적인 성장 동력 유지를 위해서도 젊은 세대의 충원이 필수일진대, 요즘 신세대에겐 결혼도 출산도 선택이요 유일한 필수로는 취업만 남았다. 실제 가구원 수 축소 이면에는 결혼 적령기 남녀의 결혼율 감소가 일조하고 있고, 결혼한 부부의 출산 보류 내지 기피도 한 몫 하고 있다. 결혼율과 출산율의 동반 감소 뒤엔 취업 못하면 결혼이 불가능해지고, 결혼한 부부라 해도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출산은 엄두를 못내는 슬픈 현실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인구학적 지표의 반란’은 그 여파가 누대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새해엔 진정 우리 사회 전반에 성장을 향한 활력이 넘쳐나면서, 일자리 창출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청년실업의 악몽에서 벗어나 이곳저곳으로부터 청첩장이 날아들고, 돌잔치 초대가 답지하길 고대해본다. 나아가 70, 80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을 위해 경제적으론 안정되고 정서적으론 풍요로우며 신체적으론 건강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노후 로드맵’이 마련된다면 더욱 금상첨화(錦上添花)이겠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