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리바이(alibi)의 어원을 찾아들면 라틴어 ‘alibi’에 닿는다. 돌고돌아 그게 그것이다. 다만 ‘다른 어느 곳(elsewhere)’라는 풀이는 낯설지 않아 좀은 덜 피곤해진다.

2. 법률용어 알리바이는 피고인·피의자가 범행 현장 이외의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로써 무죄를 입증하는 화법, 곧 현장부재증명이 된다.

3. 일상용어 알리바이는 낯은 익고 그 낯이 간지럽다 - ‘변명, 핑계’.

4. 노무현 대통령의 ‘2005년 화법’을 추리고 추리면 대연정론이 남을 것이다. 6월5일 “연정을 얘기하면 모든 국민이 야합이라며 기분 나빠하고…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가 관건”이라고 한 뒤 자주 읊어온 연정론은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한마디로 그런…아니, 그른 논란이야말로 ‘정치적 알리바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면서부터 부옇게 흩어졌다.

최 교수는 3년전 저서를 고쳐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 “지역갈등의 극복을 정치개혁의 최우선 의제로 삼고 선거제도를 바꾸게 된다면, 기존 거대정당들은 규모의 이점을 나눠갖게 되고, 보수독점적 양당체제는 강화되며, 오히려 약화되고 있는 지역갈등 구조를 다시 불러들일 수도 있다…오늘의 시점에서 지역문제가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뭔가 다른 의도를 가진 정치적 알리바이일 가능성이 크다”(‘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2005.9.9).

최 교수야 노 대통령이 좌파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그렇지도 않더라는 평가를 ‘알리바이’라고 에두른 듯싶다. 그리 점잖게 얘기했는데 청와대 반응은 왜 그리 처절했던가. 최인호 청와대 부대변인은 그 책 출간 사흘 만인 9월12일 “알리바이라는 비과학적 용어까지 들어가면서 공격당할 만큼 노 대통령의 정치역정이 의심받을 만하며, 지역주의 극복 문제가 조소당할 정도로 우선순위에서 뒤처질 문제냐”고 물었다…아니다, 울먹였다. 이내 “음모처럼 정치적 범죄를 위한 알리바이가 아님을, 설사 논리적 해명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가슴만으로라도 받아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차라리 그냥 덮어달라며 우느니만 못했다.

5. 최 교수에 앞서 정종섭 서울대 교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올해 초 언제쯤, 5년 임기 노 대통령을 두고 “이제 3년밖에 남지 않았다”며 연 말문부터 심상찮더니 그 뒷말은 훨씬 더 심했다 - “난리를 친 지난 2년이지만 되돌아보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좋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 많다”(‘천하의 인재와 미래 한국, 희망 한국’돡 ‘고래를 잡는 120가지 이야기’, 도서출판 다솔·2005.12.1 재인용). 알리바이 화법을 빌리면, 할 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만 늘려놨다는 말이다.

6. 노 대통령의 개혁은 히딩크의 화법을 빌려 아직도 배가 고픈가. 이미 개혁 피로에 절었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방향을 잘못 잡은 개혁론에 지쳤다는 개탄이다.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12·12 국회 토론회에서 “경제문제는 개혁의 미비가 아닌 정책의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어 생겨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혁은 정책 방향 오류의 알리바이라는 뜻이다. 29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년간 한국경제는 성장에도 실패하고, 분배에도 실패했다”고 또 내지른 장 교수다. 새겨들어 분배론은 성장의 알리바이 아니면 그 실패의 알리바이다.

7. 노 정권의 개혁론이 어디로 튈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 당·정·청(黨·政·靑) 저마다 저 편할 대로 개헌론·선거구제 개편론으로 지지고 볶아온 지 오래다. 노 대통령은 늦어도 내년 2월25일, 그러니까 임기 제4년 제1일이 시작되기 전에 무슨 작심을 내놓겠다고 해왔다. 뭘 잘 하려 하는데 제대로 안되더라는 알리바이를 또 들어야 할지 모른다.

8. 그 알리바이도 참아야 한다면 노 정부는 ‘참여정부’ 아니라 ‘참어 정부’다. 이승협 전 노사정위 전문위원이 ‘세계화 이후의 민주주의’(평사리·2005.11.28)를 번역 출간하면서 후기에 붙인 ‘참어 정부’는 참여없는 정부의 알리바이로 더없이 그럴 듯하다.

[[홍정기 /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