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원제목은 ‘Tomorrow′s People’, 곧 ‘미래의 인간’이다. 저자 수전 그린필드는 영국왕립연구소 소장이자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과학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국내에도 지난해 번역된 ‘브레인 스토리’(지호)등의 책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저자는 인간의 뇌에 관한 여러 편의 대중 과학서를 펴낸 공적으로 왕립학회가 수여하는 페러데이 메달을 수상하는 등 명성을 날렸다.

이 책에 미래 과학기술에 대한 예측이 나오지만 여러 과학자들이 제기한 것들이며 또 그것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저자가 이 책을 처음엔 소설로 구상했었다고 얘기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저명한 과학자인 그는 시대를 바꿀 획기적인 기술의 탄생에 대한 예견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자의 관심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정체성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그 존재의 특성인 에고(ego) 자체가 흔들리고 해체되는 등 상당히 비관적으로 전망된다.

책에 나오는 미래사회를 보면, 예컨대 2020년에 로봇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능가하고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 2025년 모든 사람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이버권(cyber-sphere)이 등장해 사람의 모든 생각과 활동은 그 속에서 분석되고 예측된다. 사생활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존재는 ‘집단적인 자아’속에 매몰된다.

또 암을 유발하거나 막는 유전자에 대한 완벽한 정보가 확보돼 2030년이면 미국 인구의 70%가 60세 이상 노인이 된다. 새로운 유전자 복제기술은 어떤 성별·연령대의 인간도 복제하며, 두 남자 사이에서도 아이가 태어날 수 있어 양성애자가 급격히 늘어나 정상적인 성(性)형태로 자리잡는다. 폐경기 여성도 정상적으로 임신할 수 있다.

이로 인한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이제 전통적인 성(性)이나 가정의 개념과 경계는 허물어진다. ‘사생활’은 과거에나 쓰던 생소한 단어가 된다. 개인적 정체감은 집단적 정체감 속에서 남는다. 사(私)는 사라지고 공(公)만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은 ‘사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은 거대한 ‘생각하는 시스템’ 연결망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이같은 개인적인 에고의 상실이다. 공적(公的), 집단적 에고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20세기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분쟁도 더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에고와 공적 에고의 분쟁으로 본다.

21세기의 가장 큰 화두인 테러리즘도 그런 차원에서 분석하며, 미래의 역사는 이 두가지 에고의 분쟁 역사로 예견한다. 따라서 이미 현재의 삶에도 나타나고 있는 공적 에고의 확산을 막는 환경에 대한 인류의 준비를 강조한다. 그 목표는 개인성의 보존이며 더 나아가 개인성의 찬양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자아야말로 우리가 소유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며 이것이 허물어질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배아복제 문제를 놓고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정작 그 과학기술이 함의하는 철학적, 미래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논의가 없었는데 이 책은 그런 시각을 제시해 준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