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송년모임으로 바쁜 연말. 음식점만큼이나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서울시내 은행·카드사, 병원·약국, 학원이 각종 소득공제 증빙서류를 떼려는 사람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살림살이가 팍팍한 만큼, 세금을 한푼이라도 아껴보려는 사람들이 ‘세 테크’에 나선 것이다. 올해는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1만원짜리 공제서류까지 꼼꼼히 챙겨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올해를 어떻게 보냈고 내년에는 어떤 소망을 꿈꾸고 있을까.

◈‘한푼이라도 아끼자’=29일 오후 1시30분 서울 마포구의 C은행 지점. 소득공제 창구에는 정산서류를 떼려는 20여명의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진모(37·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는 “대출이자 납입증명서를 떼러 왔다”면서 “회사에서 관련 서류를 이번주까지 내라고 독촉해 근무시간에 짬을 내서 왔다”고 했다. 최모(42·회사원)씨는 “잘못하다간 정산 뒤에 오히려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면서 “휴가를 내서라도 공제서류는 다 챙겨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 은행 관계자는 “하루 60여명의 고객이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정산 서류를 떼러 온다”면서 “1만원짜리 카드 영수증까지 꼼꼼히 챙겨간다”고 했다. 시중 F은행 본점 관계자는 “이달에만 팩스로 공제서류를 재발급한 경우가 1만9248건에 달한다”고 했다.

올해 처음 실시한 ‘현금영수증제도’ 때문에 국세청도 몸살을 앓고 있다. 국세청 현금영수증 상담센터에는 매일 6만~7만건의 상담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상담시간을 3시간(오전 6시~오후 9시) 연장했지만, 전화 대기자가 수백명씩이나 돼 통화하기까지에는 10분 이상씩 기다려야한다. 이 때문에 민원이 폭발하고 있다. 홈페이지 접속건수는 하루 평균 170여만건(11월 평균 10만명). 모두 현금영수 금액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홈페이지가 다운 일보 직전이다. 시민들의 관심이 이렇게 높을 줄 몰랐다”면서 “경제가 어려워서 더 문의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이 몰리기는 병원과 약국, 학원도 마찬가지. 마포구 S대학병원은 하루에 인터넷 등을 통한 연말정산 문의건수가 4300여건에 달한다. 직접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도 하루 60여명 선. 이들은 가족들 병원비 내역까지 4~5건의 서류를 한꺼번에 뽑아간다.

◈‘작지만 소중한 새해 소망’=K은행 마포지점에서 만난 회사원 이성준(35)씨는 “내년엔 경기가 제발 좀 풀려서 상여금에다 월급을 제대로 받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박모(38)씨는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주택마련저축 서류를 챙겨든 김진우(40)씨는 “부동산 값이 내려서 내년엔 꼭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S대학병원에서 1살짜리 아들의 예방주사 병원비 확인서를 뗀 예혜진(31·간호사)씨는 “아들이 건강하게 크고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도 건강하셨으면 한다”고 했다. 박관일(65)씨는 “매일 싸움만 하는 각박한 사회가 아니라 밝게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서대문구 K약국에서 만난 정모(45·주부)씨는 “음식장사를 시작하려고 한다”며 “돈 걱정을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C입시학원을 찾은 이순이(48·주부)씨는 “아들이 좋은 대학에 가길 1년 내내 빌어볼 참”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밝힌 이모(여·29)씨는 “올해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저 소박하고 평범해보이지만 절실한 시민들의 소망들이다.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