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시비교연구가 리처드 플로리다(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과)교수가 쓴 ‘창조적 계급의 부상’(2002) 에 따르면 창의성이 존중되는 도시에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고, 경제도 발전한다. 과거 사람들은 직장을 따라 움직였지만 이제는 직장이 있는 곳이 어디냐를 먼저 본다. 숨이 막히는 도시에 가서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해도 살지 않으려는 게 요즘 미국의 새로운 트렌드인 것이다.

플로리다 교수가 각도시의 기술지표 및 직업분포, 관용도등의 통계를 종합해 만든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창의성이 높은 도시는 오스틴(텍사스주)이고, 이어 2위는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3위 시애틀(워싱턴주)이다.

미국도시의 터줏대감격인 보스턴(매사추세츠주)은 5위이고, 글로벌 도시 뉴욕은 워낙 많은 이민자로 인해 도시문제가 많은 탓인지 20위로 밀려났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밖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랄리-더햄이 창의성 6위 도시로 올라있다는 점이다.

랄리-더햄이 동부의 필라델피아와 워싱턴DC, 남부 중심지 애틀란타, 서부의 로스앤젤레스 등을 물리치고 당당히 창의성 높은 도시 6위가 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노스캐롤라이나행 비행기에 오르며 떠올린 화두는 바로 이것이었다.

14일 낮 랄리-더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규모나 시설은 시골도시같은 수수한 인상이었다. ‘창의성 6위의 도시’의 첫 인상치고는 너무 단조롭고 평범했다. 공항을 나서니 40번 도로가 나오는데, 이내 랄리로 가는 40이스트와 더햄으로 가는 40웨스트로 갈라진다. 더햄쪽으로 가는 도로는 월요일 한낮인데도 한산했다. 뉴욕의 고층빌딩에 길들여졌기 때문인지 높은 빌딩하나 보이지 않는 나지막한 전원도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점점 실망쪽으로 변해가던 분위기는 리서치 트라이앵글로 들어서며 반전됐다.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단지로 들어서니 소니 에릭슨, IBM,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 시스코 시스템스 등 미국내외 굴지기업들의 로고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리서치 트라이앵글 지역파트너십’의 테드 애버나시 수석부사장은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의 발전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1950년대만해도 49번째로 가난한 주였고, 우리보다 못사는 주는 미시시피주밖에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미국에서 23위다. 실업률도 미국평균치에 비해 낮은 4.3%를 유지하고있다. 이 비결은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라는 과학기술단지를 미국 최초로 조성하고 3개 대학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 좋은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한 데 있다.”

랄리의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와 더햄의 듀크대, 채플힐의 노스캐롤라이나대는 트라이앵글의 핵심축을 형성하고있다. 랄리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은 첨단기술공학이 뛰어나고, 더햄의 듀크대는 의료공학, 생명공학이 핵심이다. 채플힐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은 법대, 경영대학원이 훌륭하다.

세 대학은 상호협력하고 경쟁하며 과학기술 의료기술을 발전시켜온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3개도시주변에는 10여개의 커뮤니티 칼리지가 있어 웬만큼만 노력하면 대부분 대학을 마칠 수 있다. 이 덕분인지 미국의 평균대졸자 비율은 24%에 지나지 않는데 노스캐롤라이나는 40%가 넘는다.

세도시를 연결짓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의 구상은 1959년 이뤄졌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와 랄리-더햄-채플힐 3개시의 시정부, 그리고 과학자들이 ‘어떻게 빈곤에서 탈출할 것인가’를 주제로 몇달간 머리를 맞댄 끝에 과학기술단지를 조성키로 결정했다.

랄리-더햄-채플힐을 연결하는 삼각형의 안쪽에 7000에이커를 조성, 개발했고 적극적으로 연구리서치기관과 기업들을 유치했다. 1965년 IBM이 이곳에 공장을 세웠고, 이어 전미환경보건과학연구소(NIEHS)가 입주했다. 40여년이 지난 요즘 이곳엔 IBM 등 미국내외의 125개 기업및 연구소가 활동하고 있으며 고용인원이 3만8000명, 이들의 총연봉은 27억달러에 달한다.

IBM에서 20년간 근무해온 빌 오웬 르노보 부사장은 “40년전 IBM이 랄리-더햄지역으로 올때 IBM 직원중 대졸자는 12%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젠 12%만이 비대졸자일 정도”라면서 “IBM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잠재적 성장가능성을 본것이고, 이 같은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IBM은 뉴욕에 본사가 있지만, 이곳에 미주 최대규모의 사무실과 공장을 갖고 있다.

오웬 부사장은 “지난 5월 IBM PC부문이 중국의 컴퓨터회사 르노보에 매각될때도 이곳 출신 IBM직원들은 누구도 반대하거나 거부감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개방적”이라고 덧붙였다. 더햄에 위치한 듀크대 메디컬 센터의 샌더스 윌리엄스 의약대학장은 “리서치 트라이앵글내 입주한 의약회사들과 연구센터들과 많은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미국 동남부에 위치한 노스 캐롤라이나는 보스턴과 뉴욕, 마이애미를 관통하는 95번 도로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미국의 주말형 농부들을 위한 고급트랙터 시장을 공략중인 한국의 농기계전문회사인 대동공업은 이같은 입지조건을 따져서 이곳에 미주본사를 마련했을 정도다.

미국사람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키오티’라는 독자브랜드를 만들어 트랙터를 판매하고 있는 김창규 사장은 “랄리-더햄이 95번도로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요충지에 있어 남부는 물론 동부와 캐나다까지 물류이동에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노스캐롤라이나 기행을 끝내며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랄리의 노스캐롤라이나대 센터니얼 캠퍼스. 1987년 노스캐롤라이나대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4억달러를 들여 새롭게 조성했다는 센터니얼캠퍼스는 원래 캠퍼스의 두배이상의 크기로 조성됐고, 여기엔 수많은 의약 벤처기업등이 입주해있다.

센터니얼캠퍼스는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의 기업들을 아예 대학캠퍼스로 불러들여 산학협동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오픈 리소스의 리눅스도 바로 이 대학캠퍼스안에 자리잡고 있다. ‘레드 헤트’로 불리는 이 기업은 바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캠퍼스에서 탄생했고, 글로벌기업이 된 요즘도 이곳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롭게 전진하고 있다는 게 센터니얼 캠퍼스 데이비드 윈우드 국장의 설명이었다.

랄리-더햄-채플힐(노스캐롤라이나)=이미숙특파원musel@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