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영화로는 가장 유쾌하고 대중적 버전이라는 평을 받는 ‘극장전’이 개봉 6일동안 2만여명을 끌어들이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극장전’의 홍보를 맡고 있는 시네와이즈필름은 “아직 관객수는 적지만 소규모(29개 극장)라도 최소 3주 이상을 보장받는 방식의 배급을 택해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비슷하게 게릴라 개봉방식을 택한 김기덕 감독의 ‘활’은 1500여명에 그쳤다.

이번 ‘극장전’에서 최고의 수훈갑은 역시 김상경이다. 김상경은 10년째 데뷔를 준비중인 감독지망생으로, 병상에 누운 선배가 만든 영화를 보고 나온 극장앞에서 영화속 여주인공(엄지원)을 만난다. 그녀를 쫓아가 영화속에서 벌어졌던 것과 똑같은 일을 벌이는 것이 ‘극장전’의 내용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영화속과 비슷한 행동을 하거나 음악을 따라부르지 않나”는 감독의 말처럼 ‘극장전’은 영화와 일상의 관계를 고찰하며 영화가 무엇인지 묻게 만드는 일종의 ‘메타영화’다. 거기에 반복과 대구의 구조적 형식미가 꽉 파고든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진짜 재미를 유발하는 것은 김상경이 연기한 동수라는 인물이다. 벌써부터 인터넷에서는 ‘동수스럽다’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동수는 생뚱맞고 ‘웃긴다’. 10년차 백수에, 생각없이 사는 단순하고 유치한 남자다. 10년째 무의도식하는 처지지만 심리적 위축도 없고, 잘 보이고 싶은 여배우 앞에서도 “사람들이 날 싫어하거든요”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친구부부에게 밥을 얻어먹고 기분이 한껏 좋아져 친구딸에게 목도리를 벗어주었다가, 친구의 사소한 말에 감정이 상해서는 금방 목도리를 다시 빼앗고, 친구부부와 대화중 아무도 기억못하는 10여년전 먹은 고기 육질을 화제로 장황하게 떠들어대기도 한다. 선배 병원비를 모금하는 자리에서는 “오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여배우에게는 수가 빤한 작업용 멘트를 날렸다가 면박 당한다.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은 늘 인간의 속됨, 부조리함, 괴물같음을 까발리고 드러내왔다. 특히 그의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지식인 남성들은 ‘난교’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열망을 제외하고는, 탐욕과 위선 사이를 지리멸렬하게 오갔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재기넘치는 유머에도 불구하고 코믹하기 보다는 암울하게만 비쳐져왔다. 동수는 그런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중 가장 귀엽고 가벼운 인물이다.

동수는 기왕의 모든 홍상수표 인물들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지식인적 자의식이나 냉소가 없다. 감독지망생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삶의 목표도 없고 절망이나 열패감도 없고, 사회적 적개심도 없이 그냥 사회적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생형 인간으로 부유하듯 살아간다(자기하고픈 대로 한다해도 당당하고 강렬하게 욕망을 발산하는 축도 못된다).

이같은 기생형의 미성숙한 성인 남자에 대해 대중이 귀엽다, 웃긴다는 반응을 내놓는 것은, 사회가 정해준 궤도를 이탈한 느슨한 인간형인 귀차니스트, 폐인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수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목표와 지향없음이라는 이미지가 성장과 발전을 당연시하는 주류적 가치를 거부하는 시대 분위기에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극장전’은 홍상수 영화로는 가장 시대적 트렌드와 접점이 큰 영화인 것이다.

이처럼 동수를 귀엽게 그려내는 데는 김상경의 역할도 컸다. 잘 알려진대로 김상경은 홍 감독을 만남으로써 만개한 배우다. 훤칠하고 기름진, 로맨스 주인공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몸무게를 10여㎏이나 불리고 후줄근한 뻔뻔남 동수를 연기한 홍 감독의 ‘생활의 발견’을 통해 비로소 ‘발견’됐다. 홍감독은 김상경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지 않고, 내 유머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배우”라고 말했다. 많은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는 홍 감독의 작품에 두번이나 출연한 김상경은 동시에 홍상수의 가장 귀엽고 생뚱맞은 페르소나(영화적 분신)로 자리잡았다.

/양성희 기자 cool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