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나이지리아는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면서 북부와 남서부, 남동부가 각각의 수도와 의회, 내각, 상급법원, 독립된 예산을 갖고 있는 연방제 정부로 독립했다. 1억3000여만명의 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270여개의 종족 중 북부의 하우사와 남서부의 요루바, 남동부의 이보 종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 따른 것이다. 인구 2000만~2500만명으로 추정되는 요루바 종족을 비롯, 나이지리아의 주요 종족집단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내려온 원초적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공통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역사적·문화적 실체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요루바 종족의 집단정체성은 19세기 이후에 들어와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근원적이기보다는 근대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까지 이곳에는 적게는 7개, 많게는 26개의 다양한 규모의 왕국들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단 한번도 통일된 정치체계나 공동체를 형성한 적이 없다. 유럽의 탐험가와 선교사들, 식민지 행정가들에 의해 요루바란 종족의 범주와 명칭이 처음 사용된 뒤 서구식 교육을 받은 요루바 지식인들에 의해 새롭게 집단정체성이 형성됐을 뿐이다.

책은 탈냉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대량학살을 동반한 종족(민족) 간의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내 대표적인 인류학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혈갈등과 분쟁의 원인을 분석한 것이다.

총론을 쓴 김광억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이태주(한성대)·한건수(강원대)·김경학(전남대)·강정원(서울대) 교수 등 지난 2년간 공동연구를 진행해온 11명의 인류학자들은 피지와 인도, 러시아, 멕시코, 일본, 홍콩, 북아일랜드, 미국,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지구촌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민족과 마찬가지로 근대에 들어와 새롭게 발명된 종족이 각 사회에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양상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 단일과 보편의 신화를 넘어서’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저자들은 책에서 단일민족이란 상상에서 비롯된 우리의 단일하고 단순한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한다.

외국인에 대한 인종편견과 민족차별적인 반응은 물론, 민족공동체 내부에서 지연과 학연, 혈연에 따른 ‘타자만들기’가 서슴없이 행해지고 장애자와 빈민, 여성, 노약자들을 별종의 인간으로 취급하는 ‘준종족화’가 자행되는 국내 현실에서 책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최영창기자 yc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