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물현대사 두번째 시리즈, ‘일등 국가를 꿈꾼 기업인, 최종현’편이 6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난해 8월 25일 시작된 ‘최종현 탐구’는 7개월여에 걸쳐 총 30회가 연재됐다. 원고지 매수만 약 660매에 달했고, 관련 인터뷰도 국내외 인사를 대상으로 100여회를 넘는 대형기획이었다.

전편인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에 이어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에 대한 연재가 시작되자 주변에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소버린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분쟁 등 SK그룹을 둘러싼 현안들이 시점상 ‘현재 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일보가 최종현에 주목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 기업 경제의 4대 버팀목중 하나인 SK그룹이 사상 유례없는 부침과 위기를 겪게 된 것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SK그룹에 대한 충분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도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30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특별취재팀은 SK그룹이 한국 경제에 미친 직·간접적인 영향을 객관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SK그룹의 탄생과 성장을 몸소 경험한 ‘산증인’들을 만나 그들의 육성을 기록했고, 미국, 중국, 베트남 등 SK그룹이 진출해있는 세계 각국을 직접 방문해 현장을 지켜봤다. 국내 언론사중 처음으로 SK㈜의 예멘 마리브 유전 탐사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시리즈를 마치며 문화일보 특별취재팀과 기획에 참여했던 SK그룹 기업문화실 담당자들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문화일보 최준영차장의 사회로 참석자들은 기사에 담지못한 시리즈 뒷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회〓장장 7개월에 걸친 대기획이었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점을 말해달라.

▲박영출 기자〓먼저 최종현 회장에 대한 방대한 취재를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점을 얘기하고 싶다.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등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들과 달리 최 회장은 철저하게 이론에 입각한 경영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1세대 기업인 중에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경영한 사람들이 많았다. 최 회장은 미국에서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최초의 기업인이었고, 이론을 바탕으로 선진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회경 기자〓SK그룹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집권형이 아니라 지방분권형이라는 점이다. 1세대 창업주들이 카리스마를 통해 중앙집권적인 경영을 해왔다면, 최 회장은 철저하게 전문경영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려고 노력했다. 시스템에 의한 경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권오용 기업문화실장〓기업문화실장으로 있으면서 SK그룹만의 독특한 경영시스템인 ‘SKMS’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많다. 항상 강조하는 점이 ‘위대한 종교와 사교의 차이점은 시스템의 차이’라는 것이다. 종교에 비유하자면 교주가 죽으면 그 종교도 죽는 것이 ‘1인 체제 경영’의 단점이라면, SKMS는 교리를 경전으로 남기려는 시도다. 경전이 남아있는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등이 위대한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업도 명문화된 경영시스템이 있다면 영구히 존속·발전 가능하다는 것이 SKMS의 기본정신이다.

▲사회〓1960~70년대 우리 기업의 성장사는 한마디로 불도저식 경영이었다. 최 회장은 70~80년대에 어울리는 경영인이라기보다 21세기형 기업가였다.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했던 그의 경영 스타일은 투명 경영을 강조하는 요즘 경영 풍토에 어울리는 방식이다. 시리즈를 전후해 최 회장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었다면….

▲유〓최 회장은 다른 기업 총수에 비해 특별하게 각인되는 이미지가 약했다. 취재를 통해 느낀 바로는 최 회장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스타일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안별로 전문적이고 섬세하게 접근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개성을 규정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확실하게 드러나는 특징은 없더라도 최 회장만의 은근한 통찰력은 그만의 강점이었다.

▲김형준 사원〓시리즈 취재를 위해 인터뷰를 참관하면서 수많은 SK 전·현직 임원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그분들의 말씀은 기업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그냥 전해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산증인들의 육성을 통해 우리 기업의 성장사를 들으면서 나 스스로도 SK와 한국의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회〓기자들도 이렇게 한 기사에 장기간 매달리기가 쉽지 않다. 제일 어려운 것이 인물 취재가 길어지면 기자가 인물에 몰입돼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절제하도록 노력했고 그만큼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했다고 본다.

▲김만기 SK텔레텍홍보실장〓장기간에 걸친 취재 과정중에 이미 회사를 떠난 분들을 포함해 많은 분들을 인터뷰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빠듯한 분도 많았지만 다들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최 회장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각별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노윤정 기자〓SK그룹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불식하는 계기도 됐다. SK그룹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쉽게 성장한 기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사실 SK가 유공이나 한국이동통신 등을 인수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맞다. 그러나 인수합병을 하기까지 매번 10여년에 걸친 치밀한 사전준비를 거쳤다는 점과, 인수후에 노사갈등 등 잡음이 전혀 없었던 점, 인수한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거의 유일한 기업이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박〓시리즈가 연재되는 동안 독자들로부터 격려 전화나 e메일을 많이 받았다. ‘SK그룹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SK그룹이 한국 경제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는 평가가 특히 많았다.

▲노〓이번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인성화된 접근’이었다. 최 회장이 강조했듯이 기업도 결국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시각에서 접근을 하면 최 회장뿐만 아니라, SK그룹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일반 독자들도 재계에 대한 시각을 긍정적으로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권〓SK그룹 내부에서도 반향이 컸다. 지난해 8월 시리즈가 시작된 후 9월에 열린 SK그룹 수펙스(SUPEX) 회의에서는 “감개무량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손길승 전 회장께서는 외국에 잠시 나가있는 동안에도 비서에게 전화로 기사 내용을 들려달라고 하셨다. “역사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인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왔다.

▲사회〓시리즈가 나간 후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많이 왔다. 결과적으로 업계 최고인 랜덤하우스중앙 출판사와 계약하고 4월 중순쯤 책을 출간하게 됐다. 최 회장의 일대기가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과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임수길 홍보팀장〓최 회장의 일대기를 어린이 위인전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기업 회장을 위인전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계기를 이 시리즈가 마련해준 것 같다. 경제에 대한 어린이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측면에서 상징적인 일이 될 것이다. 경제단체나 기업에서 학교에 비치해 어린이들에게 읽도록 한다면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유〓앞으로 SK㈜는 어떤 과제를 안고 있나, 주총 이후 큰 고비를 넘겼지만 최 회장의 유산을 어떤 식으로 발전 계승시킬 수 있을지 짚어보자. SK그룹은 최 회장 생전에 10년을 주기로 성장 모멘텀을 계속 만들어왔다. 그러나 지금 현재 10년후 먹고 살 거리가 마련됐느냐는 것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이제 10년후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박〓최근 SK 사태를 거치면서 SK그룹은 투명 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이 노력이 쫓기듯이 선택한 불가피한 대안이 아니라 한국 재계에 새로운 실험이 됐으면 한다. 최 회장이 70, 80, 90년대에 치열한 고민을 통해 새로운 경영기법을 내놨듯이 현재의 SK그룹도 이 실험을 제대로 해서 향후 우리 재계가 모범으로 충실하게 따를 수 있는 모델로 승격시켰으면 한다.

▲권〓SK그룹의 경영시스템은 그때그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키려다 농민단체나 진보단체, 심지어 대통령에게 설화를 당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광범위한 토대로 원칙을 세우면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키는 모습이야말로 SK의 큰 장점이다. 현재 최태원 회장의 투명 경영을 위한 실험도 역시 이러한 원칙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사회〓큰 기획시리즈를 마치면서 솔직히 성취감보다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더 크다. 시리즈를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애정어린 시선으로 격려와, 때론 질책을 아끼지 않고 끝까지 힘을 보태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정리〓노윤정기자 prufroc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