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국 정보통신(IT) 기업들의 선전이 유난히 돋보인다. 삼성전자는 최근 ‘뉴욕타임스’로부터 전성기 때의 소니와 같은 회사라는 찬사를 들었고, LG전자는 ‘비즈니스위크’로부터 차별화 전략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일본 언론들도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일본 10대 전자회사의 이익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소니와 미국의 휼렛패커드는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여 결국에 가서는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미국 일본 기업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한국 IT 기업들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과감한 제품 혁신으로 선두 자리를 빼앗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가 자만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40년 이상 선두자리를 지켜온 소니의 부진은 앞으로 우리 기업들에도 얼마든지 시련이 닥쳐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빠른 IT 산업의 경우 선두를 지킨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기술의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기업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며, 마이크로소프트도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빌 게이츠 회장이 말한 적이 있다. 한 기업의 대주주가 자신의 기업에 대해 이처럼 솔직한 판단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것이 경영자 빌 게이츠의 위대한 면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도 지금까지의 업적에 만족하기보다는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면서 나아가야 한다. 외부 환경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으며, 외국 기업들은 서로 연합하여 ‘타도 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끊임없는 혁신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극복해야 할 혁신의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보강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마진이 좋다. 왜냐하면 하드웨어 시장에서는 합법적인 제품 모방이 쉬워 치열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PC 가격과 액정표시화면(LCD)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는 카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유자에게 일종의 ‘독점권’이 주어진다. 물론 ‘해적판’이 존재하기는 하나 ‘해적판’이 원판을 위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둘째, 융합화·복합화가 진행되면 기술적인 융합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 콘텐츠의 융합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드웨어+콘텐츠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 최근에 한국과 미국에서 휴대폰+음악콘텐츠를 융합한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러한 융합화는 개인정보단말기(PDA)+게임,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 플레이어+영화와 같은 복합상품으로 확산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 IT기업들도 외국 콘텐츠기업과 제휴하거나 자체 콘텐츠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능력은 벤처기업이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야후보다도 페이지뷰가 많은 구글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소기업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소기업이 IBM을 상대로 경쟁해 더 좋은 운영체제를 만들어 냈다. 시가총액이 1조원이 넘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 업체들도 불과 몇 년 전에는 영세 기업에 불과했다. 대기업들은 이러한 소기업의 역동성을 잘 활용하여 윈-윈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술 혁신은 개별 기업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클러스터’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인도의 방갈로르에서 보듯이 크고 작은 기업들과 교육 연구 기관들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한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클러스터를 장려하고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러므로 정부 부처의 혁신성과 과감한 도전 정신이 기업의 역량 못지않게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주우진 / 서울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