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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폐인’이라는 열광적 팬들을 이끌고 있는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미사)’의 일등공신은 임수정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 이어 출세작을 추가한 소지섭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장화, 홍련’에서의 강렬한 연기로 지난해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던 임수정은 이 드라마로 영화와 TV를 오가며 대어의 가능성을 십분 발휘했다.후반부로 가면서 작위적인 상황설정이 두드러졌지만 시청자로 하여금 그것에 눈감게 했던 것도 바로 임수정의 호연이었다.

물리적 나이로 보면 80년생인 임수정에게 ‘소녀배우’라는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배우치고는 작은 체구에 앳된 인상은 그에게 천상 소녀의 이미지를 강하게 드리운다.

스타의 산실인 청춘드라마 ‘학교4’(KBS)로 데뷔한 이후 그의 커리어는 소녀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대통령의 반항적인 딸로 나온 ‘피아노치는 대통령’이후 새어머니와 아버지를 놓고 갈등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딸을 연기한 호러물 ‘장화,홍련’, 대학생과의 짧은 로맨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여고생으로 나온 ‘ing’ 등이 그랬다.

‘미사’에서도 임수정은 톱스타의 스타일리스트인데 처녀라기보다 소녀로 보인다. 연인 소지섭을 ‘무혁이 아저씨’라고 부르고 두사람의 체격차를 강조한 카메라워크, 히피풍 코디로 올겨울 ‘임수정패션 따라잡기’열풍을 불러온 그의 스타일도 이런 소녀 이미지를 강화한다.

드라마·영화 속에서 소녀란 오래된 하나의 주제다. 특히 최근에는 드라마와 영화의 소비연령이 낮아지면서 하이틴 혹은 로틴 시장을 겨냥한 소녀배우들의 입지도 더불어 커지고 있다.

‘어린신부’의 문근영,‘올드보이’의 누나 윤진서를 필두로, 올해 집중적으로 쏟아진 로틴 로맨스물에 주연으로 나온 이청아 정다빈 임은경 등이 여기에 속한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명랑소녀 장나라가 있고 핑클, SES 같은 소녀밴드도 있다.

이같은 일군의 소녀 배우들 가운데 임수정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그가 로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소녀애의 대상에 머물거나, 귀엽거나 청순해서 성인남성들이 규정한 백지상태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임수정의 소녀 이미지는 막 성에 눈뜨는 아슬아슬한 유혹자 소녀(‘올드보이’의 누나 윤진서), 어른 남자를 위안하는 소녀(‘사마리아’의 곽지민), 남성들의 성적 환상이 투사된 첫사랑 소녀(‘말죽거리 잔혹사’의 한가인) 등과 선명하게 구분된다.

임수정의 소녀는 아직 어른(성인여자)이 되지 못한 잠재태로서 불안한 주변부의 소녀가 아니라 생과 욕망의 주체이면서 성인 못지않게 인생의 깊이를 알고 있는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의 소녀다.

임수정의 소녀는 아이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그래서 성녀와 창녀의 이미지가 묘하게 엇갈리는 지점에 그 이미지를 겹쳐놓아 성적 유혹을 극대화한, 소녀가 소비되는 전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미사’의 명장면은 길거리 장면이다. 호주에서 부랑아로 살아가는 소지섭을 처음 만난 임수정이 추위를 피하려고 그와 부등켜안고 길바닥에서 잠자는 장면, 소지섭을 사랑하게 된 임수정이 한강변 노숙자들 틈새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그를 꼭 껴안고 잠드는 장면이다. 이 노숙 장면에서 임수정은 길거리의 사랑법, 낙오자들의 사랑의 정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때의 임수정은 결단코 실패자 남성을 소녀의 깨끗한 몸과 영혼으로 위안하는 들러리가 아니다.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의 대상이나 도구가 될 수 없는 당당한 존재감과 카리스마. 그것이 임수정의 매혹이며 임수정이 연기하는 소녀의 이미지다.

양성희기자 cool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