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국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이 중국에 매각되면서 우리의 핵심 기술 보호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저렴한 생산 비용을 가지고 한국 경제를 급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기술까지 갖췄을 때 우리 기업들은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기술 유출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일본 기업들도 최근에 한국 반도체 및 전자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처럼 우리도 일찍부터 조심하지 않는다면 10년 뒤 중국 기업에 우리의 기술뿐만 아니라 시장을 빼앗기는 쓰라린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술유출방지법은 한국 경제에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 기술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명제에는 다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통상 마찰 등을 고려할 때 기술유출방지법이 시급하다고 해서 이를 섣불리 입법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더구나 몇 번의 공청회를 거쳐서 이처럼 중요한 사안에 대한 입법안이 졸속 처리될 위험성도 있다. 따라서 법안 제정을 서두르기 전에 많은 연구·조사를 해야 하며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도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먼저, 기술유출방지법을 만들어 형사 처벌을 강화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인식의 혼란을 해결해야 한다. 즉, 대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현지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비즈니스를 잘하는 것이고 중소기업이 중국에 기술을 매각하는 것은 불법 행위라고 한다면 이는 모순이 아닐까? 또한, 정부가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인들의 자유로운 이윤 추구 행위를 막는다면 이것도 역설이 아닌가?

또 하나의 선결 문제는, 기술 유출의 범위와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기술 거래’이고 어디에서부터가 ‘기술 유출’인지 아직 구체적인 정의가 없다. 그리고 꼭 국외로 나가는 것만 기술 유출인지, 아니면 국내의 외국인 투자 법인에 이전하는 것도 기술 유출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나아가 국제학술대회에서 연구원이 발표할 수 있는 내용의 범위에 대해서도 지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안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했을 경우 상대국과 통상 마찰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일 상대방이 납득할 수 없는 법을 근거로 중국 기업의 한국 기업 인수를 막는다면 중국 정부는 우리에게 더 큰 경제 보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절대적인 만큼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이라는 변수를 감안한 법의 제정과 집행이 현실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이다. 사실 중국 기업들의 특허권 침해 사례는 심각한 국제 문제가 되고 있지만 미국 기업들도 경제 보복이 두려워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기업들은 기술 유출과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 세계적인 지적재산권 보호 컨설팅 업체의 한국 대표가 대기업들을 방문했었는데 모두 무관심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오늘날 많은 회사가 기술의 중요성과 지적재산권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21세기는 기술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이제 선진국으로부터 돈을 주고도 기술을 살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기술 인재를 육성하는 데 노력해야 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

[[주우진 / 서울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