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함박 웃음’이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적인 포인트이긴 하지만, 그 웃음 한편으로부터 수동적 정치 지도력의 유약성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광복 59년동안 피와 땀으로 쌓아온 금자탑들이 연일 허물어지고 있는데도 박 대표의 ‘함박 웃음’을 내놓는 것 외에는 사실상 속수무책인 한나라당을 지켜보는 것이 이제 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을 만큼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야당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외엔 별다른 수단이 없는 국민으로서는 한나라당과 박 대표가 오늘 한국이 처한 현실과 정면대결하는 결연한 자세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표는 이제 자신의 정치생명과 산업화 세력의 자존심을 모두 걸고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친일집안 3대가 떵떵거리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 됐다고 진단하는 정권과 상생의 정치를 논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질없는 대응이다. 여권의 과거사 청산요구를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들이고 역사 규명에 한나라당이 총력을 기울여 결판을 봐야 한다. 무엇보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재조명을 바로 박 대표가 요구해야 한다. 과연 박정희 향수가 독재자에 대한 막연한 회귀심리 때문인지, 그리고 박 대표 자신이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국민 모두 재조명하고 다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결코 이 게임은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살아나서 증언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으로서 불리하지는 않다.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와 그 시대를 재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와 업적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역사를 정권의 힘으로 재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모르고 권력에 취해있는 이 정권에 대해 역사 재조명에 따른 국론분열을 운운하는 소리가 애초부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난번 대통령의 경축사를 보고 확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재조명 문제는 재조명 카드로 뚫고 나갈 수밖에 없다. 지금 집권세력은 박정희 시대와 동학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면서 역사적 대칭점에 서왔던 산업화 세대를 일거에 역사의 중심무대에서 퇴장시켜야만 수도를 다시 만들어 새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정권에 박 대표와 한나라당이 백번 천번 사과해본들 의미없는 전략이다. 재조명이 화합을 위한 것이라는 정권의 주장엔 아무런 근거도 없다. 재조명해야만 화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재조명이후를 산업화 세력의 퇴출쪽으로 굴러가게 만들만한 선전운동의 기술만은 이 정권이 갖고 있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구상은 거대한 착각으로 귀결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기득권 세력에도 친일 3대들이 끼어있지만, 친일세력이 한나라당에 더 많이 들어왔다는 통계적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백일하에 드러난 것처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부친도 일제강점기 때 “일제순사보다 조선인 순사가 더 무섭고, 일제헌병보다 조선인 헌병이 더 무섭다”는 그 ‘조선인 헌병’의 한 사람이었다.

나라를 이 정도까지 만든 산업화 세력이 그토록 비난의 대상에 오르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차제에 모든 역사적 진실을 심판대에 올려놓고 산업화 세력에 대한 재평가를 국민 앞에서 공정하게 받는 일, 그것을 이제부터 한나라당이 주도해야 한다. 말하자면 박 대표는 ‘호랑이 등’위에 올라타야 한다. 참으로 불행한 현실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억울한 일이지만 산업화 세력은 또 다시 싸워 그 정통성을 다시 역사로부터 부여받아야 한다. 굳이 과거사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면 국론이 분열된다고 이 정권에 그렇게 충고했지만 정권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어느 정도의 혼란은 국민의 팔자로 여길 수밖에 없다. 집권세력의 과거사 뒤지기가 부질없는 책략에서 나온 것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과거사 문제를 놓고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면 한나라당은 송두리째 유실되는 사태가 올 것 같은 예감이다.

[[윤창중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