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에게 국운(國運)은 남아 있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 난맥상을 보면서 발상법을 180도 전환해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후 귀국해 언급한 ‘갈릴레이식 사고’를 오늘의 국정 상황을 관찰하는데 동원해보면 노 정권이 출범 3개월만에 난관에 봉착한 것은 천만 다행이다. 골골한 환자가 80세를 넘긴다는 옛말대로, 만약 출범한지 1년이 넘었는데도 환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일을 당했다면 어떡할 뻔했는가.

출범 3개월은 노 대통령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할 것이다. 야박하게 평가하면 노 대통령은 지난 3개월 동안 ‘대통령처럼 보이게(looking like a president)’ 하는데 실패했다. 권위주의 타파를 시도하다가 그만 대통령 자신의 권위에 큰 손상을 입었다.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벗고 땅으로 내려오면 백성이 더 겸손해져야 할텐데, 그것은 순진하고 경험이 없는 이상주의자들의 희망사항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국가지도자의 최대덕목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존경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갈파했다. 노 대통령은 5·18 행사 때 정문으로 들어갈 상황이 아니었으면 차라리 행사에 참여하지 말고 서울로 올라왔어야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뒷문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노 대통령의 인식부터 고쳐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 국민에게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고 타박을 부릴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대접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앞으로 해야할 첫번째 과제는 우선 말을 아끼는 것이다. 언급을 자제하고 신중을 기하면 국정 혼란의 상당부분은 저절로 안정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어떤 경우든 ‘즉흥 연설’은 피하고, 참모들이 적어준 ‘말씀자료’나 연설문을 존중해야 한다. 첨언할 내용이 있으면 미리 숙고해 메모라도 해서 실수가 없도록 해야한다.

둘째, 어쩔수 없이 대폭적인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서두르는 것이 노 정권의 순항을 가져올 근본적인 해법인 것 같다. 당연히 노 대통령이 장관들이나 보좌진과 임기를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도저히 함량미달로 끝까지 임기를 함께 할 수 없어 보이는 자리가 너무 많이 눈에 띈다. YS·DJ 정권 때 왜 잦은 개각을 했는지 지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행정의 달인이 아니라 처세의 달인만 보이고, 개혁의 전도사가 아니라 거리의 시위대쯤으로 보이는 얼치기·사이비 개혁주의자들이 수많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 대통령이 내각이나 청와대에 더 권한을 준다해도 근본적으로 그런 처세술, 인식, 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내각과 청와대야말로 리모델링이 아니라 아예 재건축 차원의 규모로 대폭 바꿔야한다. 능력미달의 내각이나 보좌진을 그대로 데리고 가는 것 보다 지금이라도 떨쳐버릴 사람은 떨쳐버리고 새 진용을 짜는 것이 길게보면 덜 소모적이다. 지금까지는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초당파적·초이념적 차원에서 능력가들을 대거 수혈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 3개월의 교훈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의 신당 논란은 김영삼 정권 2년차때 개혁세력이 김종필 총재를 추방할 당시를 연상시키고 있다. YS계는 JP를 추방해도 그가 충청권에서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당을 만들 수 없고, 만들어도 총선에서 실패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오히려 JP는 기사회생했다. 지역감정의 마술이었다. YS는 JP와의 결별을 계기로 임기를 마칠 때까지 하강곡선을 그렸다.

YS는 지금도 그때 JP의 탈당을 막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동교동계가 분당하면 지역감정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4개의 지역당 체제가 생기는 것은 한국 정치의 ‘저주’다. 이것만은 피해야 한다. 신당 창당 문제는 원점에서 차분히 재검토하는 것이 좋다. 민주당에 대한 뿌리깊은 서운함 때문에 집권당을 ‘고아원’처럼 방치해 방황하도록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감정에 빠져 정치를 하면 실수한다는 것이 지난 3개월의 교훈이다. 노 대통령의 분발과 변신을 기대한다.

/ 윤창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