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해 이따금 참모들에게 담배를 얻어 피운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유혹에 대한 중독’이야말로 인간의 감각과 인식 체계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점이다. 금연에 실패한 사람은 담배를 다시 입에 무는 것이 ‘유혹에 대한 중독’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고, 그래서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가졌던 감각과 인식의 체계가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내일이면 공식 취임한지 한달이 되는 노 대통령을 떠올리면서 생각해 보는 것은 그가 청와대에 들어가기전 사회를 이끌어온 세력을 기회주의자 그룹으로 분류하고, 이들 주류를 저 세상 구석으로 밀치고 비주류로 교체하고 싶은 ‘유혹에 대한 중독’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을 태반으로 출범한 것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권 안에서 노력하고 충성했던 1급 공무원들까지 기회주의자 그룹으로 분류해 일괄 사표를 받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사실 정찬용 대통령 인사보좌관이 1급 공무원들의 거취 문제를 놓고 던진 얘기는 결코 실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꽃이라고 하는 1급 공무원들의 거취 문제를 로또 복권의 복이나 운에 비유하고 “시대적 흐름과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집에 가서 건강도 회복하고 공부도 하고 배우자와 같이 놀러 다녀라”고 한 것은 감정 조절에 실패한 데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다. 기존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 절하나 거부가 본심이 아니라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다.

세칭 ‘잘 나가던 사람’들의 출세가 로또 복권의 복과 운 때문이고 권력에 아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현 정권의 주체 그룹은 또 무엇인가. 현 정권에서 실세라고 하는 사람들 누구하나 예외없이 무명(無名)에 가깝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청와대 1급 비서관이 되고, 장관이 되는 것이 바로 로또 복권 당첨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항변할 것인가. 그렇게 과거를 부정하고 출세한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갈아끼우기’ 하려는 저류가 집권 세력 안에서 집요하게 관류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노 정권과 연관이 없는 사람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고른다면서 연관이 없는 사람을 골라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현 정권의 변화 조치에 대해서도 대통령만 바뀌면 새 대통령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자신은 지금까지 딴 나라에서 살다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처럼 언행을 하는 ‘권력의 전통성’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들고 나오는 그 개혁의 예측 불가능성과 자기 독식적인 드라이브, 이로 인한 광풍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 때에는 호남이 불안해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때에는 영남 사람들이 그랬다. 이젠 생각의 코드가 다른 보수층이 하루 하루를 불안해 하고 있다. 북핵과 경제 문제로 인한 종잡을 수 없는 불안에다 정권의 국정 운영에 따른 불안, 여기에 정권 교체로 인한 일신상의 불안이 겹쳐 ‘불안 문제’는 사회의 최대 화두가 됐다.

역대 정권도 이런 자기 중심적 사고, 일방 통행적이고 이기적인 해석, 편협성 등으로 결국 대통령은 제왕이 되고, 정권 담당세력은 다수를 포용하지 못하면서 ‘소수화’의 길을 걸으며 무력화됐다. 노 대통령이 진정한 전략가라면 이쯤에서 호흡 조절을 한뒤 사회 통합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너무 비판을 못참는다. 반대파와 싸우려 들지 말고 비판을 허용하는 합리적인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3·1절 때 “지금까지는 기회주의자들이 이겼다”고 한 것은 역사와 인간 개개인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해석이 못된다. 참모나 장관들도 괜히 들떠서 설익은 철학을 얘기하는 얼치기처럼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된다. 집권 세력 내부부터 제발 토론좀 해서 언행을 가다듬기 바란다. 노 대통령이 사회 통합을 위해 서야 할 전략적 위치는 ‘중간’이다. 지지파와 반대파를 양날개로 삼아 중심 역할만 잘해도 국민 통합이 반쯤은 이뤄질 수 있다. 취임 한달은 노 정권에 교훈적이다.

/ 윤창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