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만들었고 퇴임 후 ‘귀거래(歸去來)’하고자 했던 아태평화재단이 연세대로 넘어가게 됐다.

청와대와 아태재단측은 최근 연세대측에 재단 기증 의사를 밝혔고, 연세대는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17일 “기증 조건으로 김 대통령 퇴임 이후 명예연구원 자격을 부여해 줄 것과 연세대가 재단의 자산 및 부채를 모두 인수할 것 등을 내걸었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에게 있어서 아태재단은 ‘정계복귀의 발판’이며 ‘햇볕정책의 산실(産室)’이다. 그 만큼 재단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컸다. 김 대통령은 1992년 말 대통령선거에 실패해 정계은퇴를 했다가 94년 아태재단을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그러나 아태재단은 김 대통령 집권 후 ‘또 하나의 권부(權府)’로 각인되면서 야당의 표적이 됐다.

실제로 재단 출신들 가운데는 쟁쟁한 인사들이 많다.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 신건 국정원장, 나종일 주 영국대사, 한상진 전 정신문화연구원장 등이 재단 출신이다. 민주당 최재승·이강래 의원, 남궁진 전 문화부 장관 등도 이곳을 거쳤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재단을 ‘정치인 사관학교’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후 부이사장으로 있던 김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와 이수동 전 재단 상임이사 등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면서 재단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재단 해체’여론까지 부상했다. 결국 김 대통령은 ‘대학 기증’이란 긴급 처방을 내린 것이다.

재단이 연세대쪽으로 넘어가게 됨으로써 김 대통령은 큰 짐을 벗게 됐다. 재단의 대학 기증이 김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두 아들들 문제가 파문을 일으킨 직후 재단을 공익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김 대통령은 지난 7월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아태재단을 전면개편, 완전히 새출발을 하도록 하겠다. 정치적으로 색채가 없는 분들이 재단을 맡을 것이며 (나는) 재단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연세대측은 이달 초 재단 기증 의사를 전달받고 내부토론 끝에 ‘수용’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연세대 관계자들은 “재단을 기증받을 경우 재단을 ‘대통령학연구소’ 형태로 운영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측도 “뒤늦게나마 다행이지만 약속을 제대로 이행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아태재단 일지

▶1994년 1월5일 재단법인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으로 외무부 등록. 초대 김대중 이사장, 조영환 사무총장 취임

▶94년 7월 재단 후원회 발족

▶95년 2월 제2대 임동원 사무총장 취임

▶95년 2월 재단법인 ‘아태평화재단’으로 법인명 변경

▶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

▶98년 2월 제2대 이문영 이사장, 제3대 오기평 사무총장 취임

▶99년 12월 제3대 오기평 이사장 취임

▶2000년 10월 제4대 장행훈 사무총장 취임

▶2001년 12월 동교동 신축사옥으로 이전

▶2002년 2월 이수동 이사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

▶2002년 4월 기구 축소 등 잠정폐쇄 결정

▶2002년 5월 공식폐쇄

▶2002년 6월 김홍업 부이사장 수뢰 혐의로 구속



/허민기자 minski@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