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욱 고고해보이는 것일까.

경남 함양의 화림동계곡은 수마가 할퀴고 간 영남 내륙지방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마치 모진 풍파에 초연한듯 의연한 모습으로 황석산 자락에 기대서있다.

계곡의 물은 넘칠만큼 불어 요란한 소리로 흐르지만 농월정에서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등 계곡 암반위의 정자 찾아가는 길에는 ‘소란속의 고요함’이 고즈넉하게 깃들어 있다. 농월정 달바위 한쪽편의 백일홍은 천연덕스럽게 붉은 꽃잎을 한잎 두잎 수면위로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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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다.

양반문화의 본거지라는 안동지방 못잖게 함양 또한 수많은 명현 석학들을 배출한 근거지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그에 걸맞게 함양에는 솟을대문과 고택, 누각과 정자, 충효비와 열녀각, 그리고 서원 등 조선조 사대부들의 삶의 흔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중에서도 덕유산에서 발원해 함양을 지나는 남강 최상류의 화림동계곡은, 함양이 낳은 옛 선비들의 도도한 풍류와 기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화림동계곡 찾아가는 길은 새로 뚫린 대전~통영 고속도로 지곡IC에서 빠져 안의를 거쳐 농월정을 기점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서상IC에서 빠져 26번국도를 타고 거연정부터 먼저 돌아볼 수도 있다. 계곡과 국도가 나란히 이어져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농월정 일대는 최근 잇달아 내린 비로 호호탕탕 우렁차게 흘러가는 계곡물이 장관이다.

주차장과 정자 사이에 계곡이 가로놓여 있다. 여느때는 물살을 헤치며 솟아난 암반들을 징검돌삼아 건너갈 수 있지만 물이 불어난 이즈음에는 어렵다. 다행히 지난 2월 폭 3m, 길이 88m의 농월정교가 놓아져 수량과 상관없이 정자에 오를 수 있다.

농월정 인근은 조선 선조때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을 맞아서는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진주대첩에서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곳이다.

농월정은 후세 사람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정자.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현판 이름처럼 달빛이 도도한 밤이면 달바위 등 정자앞에 펼쳐진 암반 위로 흐르는 물에 월광이 조각조각 부서져내리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동호정은 농월정에서 약 3㎞ 남짓한 거리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등에 업고 의주까지 피란길에 올랐던 동호 장만리공을 추모하여 1890년경 후손들이 건립했다. 차일을 덮은 듯 계곡의 한 가운데 바위섬으로 넓게 펼쳐진 암반과 짙은 녹색의 소가 어우러져 농월정과는 또다른 비경을 보여준다.

동호정에서 또 상류쪽으로 약 2㎞ 거슬러 올라가면 군자정과 거연정이 50여m 간격을 두고 그윽한 자태를 드러낸다. 군자정은 조선조 5현 가운데 한분으로 꼽히는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화림동계곡의 백미는 역시 거연정이다.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농월정의 번잡스러움 대신 활엽수 거목과 계곡 그리고 정자가 어우러져 선경을 방불케 한다.

거연정은 1613년에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계곡 한가운데 지어진 정자로 가려면 화림교(구름다리)를 건넌다. 정자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바위를 뚫고 자란 소나무와 검푸른 소, 기암괴석의 오묘한 조화가 저절로 시심을 불러일으킨다.

화림동계곡 일대에는 최근 답사객이 늘며 민박집과 식당이 잇달아 들어서고 있다. 농월정에는 방갈로민박집인 동원가든(055-962-4400)이 있으며 군자가든(055-962-9525), 새들촌모텔(055-964-0939) 등이 계곡의 물소리를 벗삼아 여독을 풀 수 있는 곳들이다. 또 농월정 옆 황석산 등반기점에 자리잡은 황석산청소년수련원(055-962-9377)은 방마다 취사시설과 화장실을 갖춘 가족형 방갈로를 운영하고 있다. 1박에 5만8000원.

/글〓이경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