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푹 젖어도 좋은 곳이 있다. 오히려 젖은 옷에서 차향같은 그윽한 향이 배어나는 곳이다.

식영정에서 소쇄원 그리고 명옥헌으로 이어지는 전남 담양의 고풍스러운 정자와 원림.

호남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담양의 고서면 사거리에서 887번 지방도를 타고 화순·무등 쪽으로 직진하면 광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성산별곡의 무대인 식영정이 자리잡고 있다.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에서 송강 정철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등과 함께 교류하며 성산별곡을 남겼다. 식영정을 나와 광주호로 흘러드는 창계천을 건너면 환벽당에 닿는다. 정철 김성원 등이 학문을 익혔던 곳이다.

식영정과 환벽당을 뒤로한 뒤 가사문학관을 지나면 남도 전통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소쇄원에 닿는다.

조선 중기 신진사대부였던 양산보(1503∼1577)는 스승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귀향가자 처가에서 가까운 담양에 소쇄원을 짓고 여생을 학문에 바쳤다.

소쇄원은 약 1만평의 부지에 제월당 등 10여동의 건물과 연못 계곡 대나무숲 그리고 온갖 수목이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계곡을 막지 않고 담을 설치, 맑은 계곡물이 지금도 담밑으로 그대로 흘러들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다시 길을 돌아나와 고서사거리에서 창천IC쪽으로 길을 잡으면 명옥헌에 닿는다.

지난 2000년 10월 개관한 가사문학관(061-380-3240)에는 송순의 면앙집, 정철의 송강집 등 가사문학 자료와 친필유묵, 소쇄언도, 임금이 하사한 옥·은으로 만든 잔 등 24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