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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비(전인화):경빈 그 입 다물라 내 원자가 대통을 이을 것을 추호도 의심해 본 일이 없다고 했느니! 경빈의 말은 더 듣고 싶지 않으니 물러가라!

경빈(도지원):중전마마, 실기하시오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옵니다.

윤비(전인화):뭐라 경빈? 내 물러가라했느니! 〈SBS TV ‘여인천하’ 중〉

병훈모(김용림):아니, 또 호박나물이니? 난 가지나물을 좋아한다고 몇번 얘기했니?

정님(강성연):어머니. 제가, 가지만 봐도 입덧을 해서요.

병훈모(김용림):그래서, 나한테 먹지 말라는 거야? 너는 왜 그렇게 사사건건 내 속을 뒤집니? 가지나물이고 뭐고 필요없어! 〈SBS TV ‘소문난 여자’ 중〉

드라마속 여자들이 싸우고 있다. 고부간의 갈등이나 사랑하는 남자를 사이에 둔 여자들의 다툼은 드라마의 고전적 소재. 그러나 요즘 TV를 보면 좀 너무하다 싶다. 방송 3사의 드라마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처와 첩, 시누이와 올케가 끊임없는 갈등만을 되풀이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고정관념을 TV가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의 대표주자는 SBS TV ‘여인천하’. 현재 주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사극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이 드라마에는 ‘비상식적인’ 여인들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 중전의 회임 여부에 대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더니 요즘은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전쟁중이다. 거기에 극중 윤원형(이덕화)의 부인인 김씨와 난정의 처첩갈등까지 추가됐다. 한 나라 왕의 부인들 누구도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거나 너그러운 인품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하고 시급한 목표일 뿐이다. 점점 과격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전개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여인천하’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사극이 아니라 단지 여자들이 싸우는 이야기일뿐’ “남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여자들이 저렇게 나서니 나라꼴이 뭐가 됐을꼬’한다”는 등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시댁과 며느리의 갈등은 거의 모든 드라마에 등장한다. 비교적 현실적으로 직장여성의 고민을 그리고 있는 MBC ‘그 여자네 집’도 아들의 아침식사를 둘러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과장된 갈등이 최근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었다. SBS ‘소문난 여자’의 시어머니는 입덧하는 며느리에게 “그정도 입덧 안하는 여자가 어디있냐”며 호통을 치고 잃어버린 곗돈을 훔쳐갔다고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MBC 일일 드라마 ‘결혼의 법칙’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움이 주소재다. 그 외에도 MBC 새 월화드라마 ‘선희 진희’는 일과 사랑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27일 시작하는 KBS 아침드라마 ‘동서는 좋겠네’도 한 집안 세 동서의 갈등을 그려낼 예정이다.

YMCA ‘좋은 방송을 위한 모임’의 김영선 회장은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TV에서 여자를 그저 시시콜콜한 일에 싸우는 존재로 그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설령 고부간의 갈등과 여자들의 다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라고 해도 TV를 통해 보다 밝고 지혜로운 대안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일과 가정생활을 지혜롭게 해내는 당당한 여성들의 이야기와 가슴 훈훈한 여자들의 우정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너무 건전한’ 소재인지 제작진에게 되묻고 싶다.

/이영희 기자 misquick@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