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기다린 끝에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기약없는 이별의 시간 속으로 헤어져야할 이산가족들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사흘동안 남북의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비비대며 마음속에 그려넣는 모습이었고，50년간 쌓인 사연을 전하는 이들은 시간을 붙들어 매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네 학생 때 사진을 늘 간직하시며 ‘낮잠자는 내 아들’이라고 불렀단다.”

27일 잠실롯데월드호텔에서 아버지 제사를 지내던 북한의 공훈예술가 정두명(67·평양시)씨는 이같은 가족의 전언에 “아버지 영정을 가져갈래요”라며 한스런 지난 세월을 달랬다. 두명씨의 어머니 김인순(89)씨가 제사를 지내는 아들을 바라보며 “두명이가 왔어요”라고 흐느끼듯 말하자 두명씨는 “아버님, 불효자식 왔습니다. 제가 왔습니다”라며 조아렸던 머리를 들지 못했다.

●…이날 개별상봉에서 북한 집단체조의 거장 김수조(69)씨는 롯데월드호텔 객실 방문 밖까지 나와 복겸(54)씨 등 조카 4명을 반갑게 맞았다. 전날 전해들은 아버지 수희씨의 사망소식으로 상심했을 조카들에게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주려는 듯 김씨는 일일이 조카들과 포옹을 했다.

자신이 연출한 평양세계학생축전을 마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찍은 사진이며 북에서 받은 공화국 영웅증서, 인민예술가 증서 등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던 김씨도 이모 진양덕(79)씨를 보자 먼저 세상을 뜬 부모 생각에 마음이 아팠는지 “어머니가 꼭 살아계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50년 세월을 혼자 살아온 아내와 다시 만난 전영수(79)씨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서인지 아내 유정규(74)씨의 손을 꼭 쥔 채 놓을 줄 몰랐다. 유씨는 “전날 남편이 생각보다 젊어보인다고 해 기뻤다”며 “남편도 예전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고 말해 반세기를 훌쩍 넘어선 부부간의 사랑을 보여줬다.

개별상봉 인원이 5명으로 제한되는 바람에 다른 친지의 신분확인용 카드를 이용해 뒤늦게 아버지의 방을 찾은 딸 애일씨도 생후 한달도 안돼 자신과 헤어진 아버지의 모습을 가슴에 새겨두려는 듯 전씨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해 주위 친지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가난으로 고생하던 어머니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집단상봉에 이어 숙소인 롯데월드호텔 1215호실에서 누님 무교(82), 여동생 갑교(66), 남동생 병무(63)씨와 두번째 만남을 가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 출신 이상무(69)씨는 가난에 힘들어 하던 부모님 생각에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상무씨는 “방문단에 포함된 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어머니께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상무씨는 ‘세기와 더불어’라는 책자에 실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벽면 선반 위에 올려놓고 남쪽 가족들에게 “함께 절을 올리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북에서 찾아온 남편 황창수(84)씨는 27일 개별상봉에서 반세기 만에 만난 ‘남쪽 아내’ 송순섭(82)씨가 “앞으로 잊었던 나를 생각해달라”면서 금반지를 끼워주자 다소 멋쩍은 듯 웃었다. 송씨는 “결혼당시 끼고 있던 반지를 지난 98년 ‘금모으기운동’에 내놓았다”면서 “남편과 상봉을 앞두고 금반지를 새로 마련했다”며 웃었다. 북한에서 재혼한 황씨는 이날 남쪽 가족들에게 북한에 있는 1남4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지난 세월 고생이 참으로 많았다. 정말 미안하다”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100세까지 사시라고 매일 기도했어요.”

51년만에 어머니를 만난 감동이 미처 사라지지 않은 듯 김두식(70)씨는 남측 상봉가족중 최고령자인 어머니 허계(92)씨를 연신 쓰다듬으면서도 허씨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허씨는 “점을 보니 아들이 죽었다고 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살아 돌아온 걸 보니 기쁠 따름”이라며 “아들의 얼굴을 봐서 그런지 어제는 여느때와 달리 잠을 푹 잤다”고 말해 지난 세월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털어놨다. 김씨는 허씨의 말이 끝나자 마자 “점은 미신이야요, 내가 이렇게 살아돌아왔는데…”라며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이산가족 상봉 북측 방문단에 포함돼 서울에 온 최인권(67)씨가 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돼 전사자로 처리돼 있는 사실이 27일 뒤늦게 알려졌다. 정부 기록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최씨는 지난 50년 12월 중국군과의 치열한 전투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이미 전사 처리돼 있다는 것. 그러나 고향이 경남인 최씨는 국군포로 출신 여부를 확인하는 일부 언론에 “의용군으로 자진 입대했다”고 주장했다.

〈강연곤·이영희·유희연·이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