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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회(原安委) 위원장이 지난달 국정감사일에 전격 사퇴했다. 취임 10개월 만이다. 한국과학기술원 초빙교수 시절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비를 받은 것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것이다. 사실 대학교수가 연구비를 지원받은 것을 두고 사업에 관여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언제인지 모르게 슬쩍 개정돼 ‘최근 3년 이내 원자력 이용자 또는 원자력 이용단체로부터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하는 등 관련 사업에 관여했거나 관여하고 있는 사람’을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규제 기관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한 조항이 아니라, 원자력 전문가를 배제하는 조항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원자력연구원 출신도 안 되고 학술연구비를 지원받은 것까지도 문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후케타 도요시(更田豊志) 위원장도 원자력연구원 출신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크리스틴 스비니키도 원자력 진흥을 담당했던 에너지부의 공무원이었다. 데이비드 라이트는 전력연구원(EPRI) 이사였다. 출신과 독립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독립적 의사결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강 전 위원장은 그 조항을 들어 다른 원자력안전위원 4명을 자진 사퇴시킨 바 있어 자신만 예외로 인정받겠다고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원자력 전공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환경운동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의 변호사, 화학공학을 전공한 대학교수,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공무원 이렇게 4명만 남았다. 원자력안전위원이 대거 사퇴함에 따라 의결정족수에 미달하게 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2명의 위원을 추가했다. 이들도 각각 지질환경과 생물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로 분리할 때 내세웠던 ‘원자력 안전 규제의 독립성’이라는 원칙이 지금 우습게 정착하고 있다.

첫째, 원전사업자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한다며 원자력 전문가를 배제하고 원자력 안전 규제 전문기관을 격리시키고 있으며, 진흥 관련자를 배제하다 보니 퇴보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독립적인 행정청으로 기술적 판단에 의한 행정행위를 해야 함에도 주요 사안에 대해 상급기관에 보고하고 지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성도 문제다. 원자력안전위원을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한 것은 여당과 야당이 합의를 통해 적임자를 추천하도록 한 것인데 실은 여당과 야당이 위원 나눠 먹기를 하면서 회의체가 정쟁의 장이 된다. 넷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 발전을 한다는 전제 아래 안전하게 하도록 하는 기관인데, 탈원전 운동가들로 채워지면서 감시자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아니라 나서서 없애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정부의 신뢰도에 비례한다. 정부를 믿지 못하면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정부가 신뢰도를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이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원전을 선언하는 것은 이래서 더욱 코미디다.

국민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오로지 과학과 기술의 잣대만으로 원자력 안전을 판단하고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독립성을 명분으로 전문가를 배제하고 탈원전 선동가를 영입하는 것은 공정한 과정도, 정의로운 결과도 아니다. 전문성은 적폐가 아니다. 대선 공약을 착실히 이행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행정청을 미덥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