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코뿔소 이야기
        
프랑스 극작가 이오네스코가 쓴 3막 극 “ 코뿔소”란 작품을 읽은 지가 수 십 년이 지났으나 그 작품이 주는 신선한 충격에 다시 읽고 싶었다. 온갖 잡서들로 빼곡한 골방에서 그 책을 찾아 낸 것은 ‘ 이게 나라냐?’ 라고 외치며 사분오열되어가는 국난 속에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고자 함이니 우연한 일은 아니다.

시골 작은 평화스러운 마을에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코뿔소 한 마리가 나타나 소동을 부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놈들이 하나둘씩 늘어나 삽시간에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저놈을 물리쳐야한다고 너도 나도 법석을 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코뿔소와 수군대기 시작하면서 마을사람들 이마에는 그 뿔이 돋아나면서 피부는 딱딱한 암록 색으로 변해 가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은 코뿔소와 한 무리가 되어 놀아나는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그 이상한 코뿔소란 전염병은 본인이 원치 않으면 절대로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보기 흉한 코뿔소를 스스로 원했고 모두 코뿔소가 되어 가고 만다.

이 마을의 베랑제라는 한 청년은 나 하나만 이라도 코뿔소가 되지 않고 인간으로 남겠다고 몸부림친다. 그 결과 베랑제는 변신한 코뿔소 무리들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갖은 회유와 핍박을 받게 되고 드디어 그 마을의 미운 오리새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사회적 왕따가 된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외면하고 스스로 그놈의 코뿔소 가죽을 뒤집어쓰고 갈 길을 찾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구실을 앞세워 스스로 코뿔소가 되고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그들만의 요란한 울음소리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고 있으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3선 4선 금뱃지를 자랑하지만 하는 짓거리를 보면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요즘 정국을 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눈앞에 보인다. 그 코뿔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민주주의나 복지는 이미 인류 역사에서 폐기되었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 코뿔소란 놈들은 이미 가정과 직장과 사회전반에 만연되어 우리들의 삶의 가치기준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 요란한 울음소리는 암세포나 불치의 바이러스처럼 우리들 의식 속에 파고들어 무한증식 되어 가고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공권력의 자위권 행사를 주저하는 법조계나 행정부, 군경 검찰,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는 각종 시민단체나 위원회가 언론과 국회까지 장악하여 대한민국 수호세력을 압박하는 코뿔소가 만연되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그 코뿔소들이 처 놓은 정책적 포풀리즘 덫에 걸려 그들 던지는 1회성 단맛에 혹하여 이성을 잃고 있다. 권력과 명예와 차기 집권을 위해 좌우의 살핌도 없이 무섭게 질주하는 그 거대한 왕초 코뿔소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하는 정치인이나 괘씸죄가 무서워 몸보신하는 재계가 마냥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코뿔소가 되기를 원하는 놈들은 당장 코앞만 바라보고 그 무엇이건 자신의 양심을 굴복시키고 스스로 인간됨을 포기하는 멸종에 지나지 않는다.

여론이라는 것을 앞세워 자기 양심과 신념을 팽개치고 대세에 영합하여 금배지를 얻으려는 코뿔소들이 우후죽순 처럼 늘어나고 있으니 앞날이 캄캄하다. 이번 4.15 총선에 그들을 가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대한민국은 사라진다. 어쩌면 나도 삶과 죽음이 맞물린 갈림길에서 코뿔소와 한 무리가 되어 인생을 쉽게 살아오지 않았는지 자신을 되돌아본다.

동 트기 전 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는 새벽별을 바라보며 젊은 베랑제처럼 가는 곳마다 미운 오리새끼가 될지언정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우월성을 고집하며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진정한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하며 이아침 윤동주의 서시를 되씹어 본다.

“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