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사태가 경제계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오면서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한 동양그룹 5개 계열사 중 일부는 자본이 완전 잠식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들 회사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산 투자자들은 원금의 상당부분을 날릴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동양그룹 사태를 계기로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는 건 부끄러운 한국경제의 자화상이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건 방치돼온 CP시장 문제다. 신용상태가 양호한 기업들이 신속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많이 이용해왔던 CP는 동양 사태를 계기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급전 조달 수단으로 악용되어왔음이 드러났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불완전 판매 문제 역시 이번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금융상품 가입시 깨알 같은 약관 설명서에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곳에 자필 서명하는 것으로 상품설명을 대신하는 게 관행화돼 있는지라, 5만여 동양그룹 CP 개인투자자들의 하소연과 울분이 남 일 같지 않다. 동양 계열사가 발행한 투기등급인 CP·회사채 물량의 73%를 동양증권에서 떠맡았다고 하니, 그룹계열 증권사의 모그룹 종속성도 앞으로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됐다. 특히 그룹 위기를 알면서도 손실 위험성이 있는 채권을 발행해 개인투자자에게 떠넘긴 동양 오너와 경영진,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감독 당국의 책임은 명명백백히 규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뿐일까. 동양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간과해선 안되는 것 중 하나는 ‘투자자 책임’문제다. 동양 CP 등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모든 투자에는 위험이 따르고, 책임은 투자자의 몫이라는 건 시장경제의 기본 룰이다. 투자시장에서 통상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위험이 높은 만큼 수익이 높다는 의미)이란 말을 하는데 이는 반대로 수익이 높으면 그만큼 높은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은행 예금 금리의 2∼3배 수익률을 보장해준다는 동양 CP에 투자할 때는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전제돼야 한다. 더욱이 동양그룹 채권을 산 투자자 중 절반 이상이 동양 채권에 2회 이상 투자했다고 하니 최소한 이들은 투자수익에 만족해 ‘위험한 투자’를 재시도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개인투자자 중에는 일부에서 하소연하는 것처럼 ‘적금이라고 속여서’피해를 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불완전 판매나 사기성 판매로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해선 분명한 구제가 필요하겠지만 자기 책임 아래 투자한 이들까지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구제할 수는 없다. 동양사태를 계기로 투자자보호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제도적 보완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만 여론이나 정치권 압박에 밀려 ‘개인투자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구제하려든다면 더 가혹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자칫 투자이익은 사유화하고, 투자손실은 내 책임이 아니라는 풍조가 만연해진다면 한국의 투자시장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다.
“동양사태의 원인은 사기판매”라는 한 개인투자자의 절규가 귓가를 맴돈다. 온갖 사탕발림 유혹이 난무하는 투자시장에서 ‘모든 투자의 책임은 내가 진다’는 원칙 하나를 재확인한다면 적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교훈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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