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비상 시국회의 및 미사’를 마친 사제단과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김선규기자
30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로 폭력시위가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원천봉쇄를 천명했던 검찰과 경찰은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검경은 종교계의 가세로 무작정 ‘법과 원칙’을 내세울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사제단, “비폭력은 인격의 표현” = ‘국민 존엄을 선언하고 교만한 대통령의 회개를 촉구하는 비상시국회의 및 미사’라는 제목의 사제단 시국미사는 30일 오후 7시30분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시작됐다. 경찰 추산 8000여명, 주최측 추산 3만여명이 참가했다. 사제단 신부 200여명은 ‘국민이 준 힘으로 누구를 지키는가’ 등이 쓰여진 피켓을 들고 나와 최근 경찰의 시위진압에 항의했다.
오후 8시50분쯤 미사를 마친 뒤 사제단은 ‘공안정국 끝을 알지’라는 피켓을 붙인 십자가를 앞세우고 숭례문 ~ 한국은행 ~ 명동 ~ 을지로1 등으로 가두행진을 벌였다.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연행자와 부상자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행진에 앞서 김인국 사제단 총무가 “비폭력은 인격의 표현이다. 여러분을 믿는다”며 비폭력을 호소했다. 사제단은 오후 10시쯤 서울광장으로 돌아온 뒤 “서운하더라도 자리를 파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며 시위대 해산을 종용했다. 일부 과격한 참가자들이 “이대로 가면 안된다. 거리로 나가자”고 선동했으나 이내 “신부님이 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신부님들 단식하시는 데 조용히 하라”는 다수의 시민들의 목소리에 묻혔다.
사제단은 서울광장에 천막을 설치, 무기한 단식기도에 들어갔으며 매일 오후 6시30분 시국미사를 열기로 했다. 김인국 신부는 “우리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게 아니고, 다만 국민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사랑하며 국민이 대통령을 뽑은 그 뜻을 살리는 게 사제단의 역할”이라며 ‘정권 타도투쟁’과 분명히 선을 그었다.
◆검·경, 원칙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 =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사무실 압수수색, 지도부 검거 작전, 시위 원천봉쇄 등 강경 대응에 나섰던 검찰과 경찰로선 곤혹스러운 입장이 됐다. 종교계의 개입으로 폭력시위가 진정되는 것은 반겨야 할 일이지만, 야간 거리점거 시위는 어디까지나 불법이기 때문이다. 사제단은 미사이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현행 법상 야간 거리점거는 엄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경찰이‘법질서 회복’이라는 원칙만 믿고 강경책을 썼다간 자칫 현실에선 역풍을 맞을 수 있다. 1일 오후 사제단 시국미사 관련, 경찰의 경비계획은 이같은 고심을 반영하고 있다. 경찰청은 “특정 지역, 미국 대사관, 정부 청사 등 주요 시설 진출로는 빈틈없이 방어하되, 관련 집회와 행진은 안전하게 관리하고 시민 불편 최소화에 주력한다”는 원칙을 내놨다. 또 종교계 가세 이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언제까지 방치하기도 힘들다. 사제단이 매일 시국미사를 열기로 한 데다 불교계 및 기독교계의 가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시위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져 검경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오는 3일에는 개신교계의 시국기도회, 4일에는 불교계의 시국법회가 예정돼 있다. 경찰은 폭력이 사라졌다 해도 야간의 거리 점거 시위는 시민의 불편을 유발하는, 막아야 하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임정환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