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오락가락 행보로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우방국들은 배신감을 토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 발언에 연일 진땀을 흘리고 있고, 미국 내에서는 관세 불확실성에 투자와 소비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일관성 없는 행보 속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을 하나, 둘 챙겨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멕시코를 상대로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해주는 대가로 자국으로의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 유입 통로인 국경 통제 강화를 위한 자금과 인력을 약속받았다. 특정 국가에 이어 품목별 관세 부과 예고만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기업들로부터 조 단위 선물 보따리도 챙겼다. 이 정도면 트럼프 대통령의 별명을 ‘매드맨’보다 ‘밀당의 고수’ 또는 ‘전략의 달인’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해 보이기까지 한다. 미국의 통상 상대국에 이어 미국인들의 관세 반감이 커지고 있다지만,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집권 1기 때와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47%, NBC 조사)을 기록하고 있다.
좌우를 오가는 오락가락 행보로 비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효과로만 보자면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기 대선 시 향방을 가를 중도층이 민주당으로 향하는 것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하는 행보에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 대표가 자청해 보수 논객과 대담에 나선 것도 이례적 행보였다. 내용 자체도 화제가 됐다. 이 대표는 대담에서 “민주당도 잘못한 게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돌아보면 우리가 완전무결하게 잘했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며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 일부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체를 주장해온 재벌에 대해서도 “병폐가 많이 완화됐다” “국제사회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달라진 인식을 내비쳤다. 반대편에서는 진의를 의심하지만, 이 대표는 이러한 자신의 변화를 “유연성”으로 표현했다.
이 대표의 유연성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통할까.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들은 저를 ‘한국의 트럼프’라고 부른다”며 스스로를 ‘실용주의자’로 칭했다. 이 대표가 과거 트럼프 대통령을 실용주의자로 평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질감을 나타내며 호감을 내보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도 셰셰(謝謝), 대만에도 셰셰”라는 그의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유연성으로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외교·안보 관계에서 유연성은 그저 모호한 태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DC에서는 미군을 ‘점령군’으로 부르고, 한·미·일 해상훈련을 ‘국방 참사’ ‘안보 자해’라고 평가했던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최근 이 대표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대표의 말대로 미국이 걱정하지 않도록 외교·안보 노선을 또다시 바꾸지 않길 바란다.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 괜한 줄타기로 혈맹 미국의 의심을 사는 건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
황혜진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