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국회 사랑재. 김진표 국회의장이 윤석열 대통령 및 여야 원내대표·상임위원장단과 2시간 넘게 오찬 간담회를 가진 뒤 마무리 발언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김 의장은 허준의 ‘동의보감’에 나오는 경구인 ‘통즉불통(通卽不痛)’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이 잘 소통하면 국민의 고통이 사라진다. 앞으로는 대통령의 시정연설 당일에 상임위원장단과 회동하는 방안을 정례화하면 좋겠다.”
찬성하면 박수로 화답해달라는 김 의장의 제안에 곳곳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 의장은 지난 7일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진행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1대 국회를 이끌며 가장 보람찼던 순간으로 이날 대통령·상임위원장 만남을 지목했다. 김 의장은 “윤 대통령은 평소 ‘예스(yes)’ 소리만 듣다가 국민의 쓴소리를 경청했고, 야당 상임위원장들은 윤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마무리 발언에서 윤 대통령과 상임위원장들을 향해 ‘여러분 모두 오늘 보약을 드셨다’는 덕담을 건넨 이유”라고 설명했다.
의회 내 대표적인 ‘협치주의자’로 꼽히는 김 의장이지만, 회동 추진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김 의장은 지난 5월 중순 윤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국회의장단 만찬에서 이 아이디어를 처음 꺼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좋은 제안이다. 제가 직접 (국회로) 가겠다”고 답했으나 민주당 일각에서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응하느냐”라는 반발이 나왔다. 이에 김 의장은 윤 대통령과 국회의장단, 여야 대표, 5부 요인이 참석하는 사전환담으로 시작해 상임위원장 간담회·오찬으로 이어지는 계획안을 다시 제안해 10월 31일의 회동을 성사시켰다. 김 의장은 “이날 회동은 국민이 열망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시작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다면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은 무엇일까. 김 의장은 민주당이 간호법 제정안과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의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한 장면을 언급했다. 본보 인터뷰 후 지난 9일 민주당은 여당 반대에도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김 의장은 “일부 양보해도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야당이 국민으로부터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중재하고 협상을 이끄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