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담 스님이 가느다란 세필을 잡은 채 그리고 있던 고려불화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고려불화는 돋보기를 대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필치가 특징인 그림이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고려불화 계승자 혜담 스님
“이번에 루브르에서 특별상을 2개 받았어요. ‘고전’과 ‘창작’ 두 분야인데 모두 심사위원 특별상이죠. 그런데 진짜 안타까운 일이 이번에도 있었어요. 어떤 일본인 여자 관람객이 고려불화를 보고 자기네 나라 그림이라고 하는 거예요. 실제로 프랑스 현지에서는 고려불화를 일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지난 15일 경기 수원에 있는 계태사 수원 포교당에서 만난 월제(月齊) 혜담(慧潭) 스님은 먼저 지난 연말의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 얘기부터 꺼냈다.
혜담 스님은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프랑스국립예술협회의 초청을 받아 지난해 12월 17일부터 21일까지 루브르박물관에서 초청전을 가졌다. 스님은 고려불화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 ‘고려불화의 계승자’로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인사다.
혜담 스님은 이번 루브르박물관의 초청전에 총 12점의 작품을 전시했으며 이 가운데 고려불화 ‘수월관음상’으로 ‘고전’ 부문 상을, 창작품인 ‘화두’ ‘무상’ ‘해탈’로 ‘창작’ 부문 특별상을 각각 수상했다. 창작품은 스님의 ‘전생’을 현대적 필치를 가미해 그린 것으로 고려불화 못잖게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고려불화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형태, 화려한 원색, 빛나는 황금 색채 그리고 정교하고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선 등으로 인해 10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고려불화의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는 돋보기로 확대해서 봐야 비로소 실감할 정도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약 160여 점에 불과하고,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불화는 10여 점뿐이다. 미국과 유럽에 일부 20여 점의 고려불화가 있으며 대부분인 130여 점은 일본에 소장돼 있다.
유년 시절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혜담 스님은 자연스럽게 종교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75년 우연히 책 속에서 고려불화를 만나면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의미도 모른 채 고려불화를 따라 그리곤 하였다. 그후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비구니 스님으로 출가한 후 본격적으로 고려불화를 그리면서 그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더욱 열정을 다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장 복원을 연구할 표본 작품마저 찾을 수 없었던 척박한 환경에서 고려불화의 맥을 찾아나선 지 40여 년 만에 마침내 금세기에 700년 전 고려불화를 완벽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전통계승자는 물론 복원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았고, 국내에서는 유물을 보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어요. 국내소장 미술관과 해외 소장처를 발로 찾아다니면서 고려불화를 직접 보고 화법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한 집념으로 섬세하고 귀족적인 고려불화를 완벽하게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스님은 34종 230여 점의 고려불화를 복원했는데, 그 가운데는 3년여 동안 공들여 조성한 수월관음상(높이 5.2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수월관음상)과 대작 오백나한도, 부처님 열반도, 관경변상도 등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중·대작 고려불화들이 총망라돼 있다.
스님이 조성한 고려불화에 대하여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루이스 R 랭커스터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 및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혜담스님의 고려불화는 단순한 재현이나 복원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해야 당연하다”고 평가했으며, 고려불화에 관한 학술연구에 있어 국내 최고의 권위자인 정우택 동국대박물관장은 국제학술대회에서 “스님은 이제 완벽한 경지에 이르셨다”고 극찬했다.
심지어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큰스님은 “불화를 그리는 스님의 손은 관음보살의 손”이라고 표현하는 등 한국불교계의 큰스님들도 경이로운 스님의 작품에 찬탄을 보내고 있다.
“작업을 시작하면 하루 17시간씩 엎드려서 가느다란 세필로 직업을 합니다. 작품 하나 만드는 데 6개월 이상씩 걸리죠. 작업의 후유증으로 어깨가 탈골되고 안구의 핏줄이 터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붓을 놓을 수 없었어요. 죽고 사는 것을 그저 부처님에게 맡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스님은 복원에 머물지 않고 이의 계승과 발전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고려불화의 가치 입증 및 화법에 대한 정밀 연구를 위해 연구소를 설립하여 국내외 전시회와 국제학술대회, 국제포럼 등 적극적으로 행사를 개최하고, 참여했다 . 그리고 수많은 화보집 출간과 상설전시장 및 온라인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별강의와 각종언론 및 TV방송, 외국TV 언론 등 파급효과가 좋은 매스컴을 활용한 홍보에도 남다른 노력을 쏟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지난 2014년에 이어 2015년 모두 2차례에 걸쳐 스님 초청전시를 기획한 것도 모두 그 같은 노력의 결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2014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전시회를 계기로 일본, 인도,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스님의 작품에 대한 초청 전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또 스님은 고려불화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이를 위해 1990∼1998년까지 수원시 장안동 소재 예술의집 빌딩을 임차하여 작품을 상설전시했다. 1998년에는 수원시 권선구 탑동소재 부지를 매입, 전시장을 신축운영했고, 2007년부터는 강원 속초시 노학동에서 고려화불박물관 상설전시장을 개관 운영하고 있다.
8개월 전에는 수원에 다시 포교당 겸 작업실을 열어 칠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원과 속초를 오가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내 전시도 적극적으로 개최해 왔다. 찾아가는 문화사업으로 1999년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전국 주요 7대도시를 순회하는 초청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이어왔다.
“모든 전시마다 성황을 이뤘는데 2007년 세종문화회관 전시회는 미술관 개관 이래 최대의 관람객이 방문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당시 전시했던 그림 중 하나가 무려 1억2000만 원에 팔렸어요. 그러고도 여러 그림이 팔려 수억 원이 생겼어요. 그 돈을 보며 ‘이제 내가 10년은 시주 안 받고 살 수 있겠구나’ 하며 수원을 떠나 속초로 갔죠. 그런데 9년밖에 못 살고 다시 나왔어요(웃음).”
혜담 스님은 지금까지 고려불화의 연구와 복원, 홍보를 위해 노력해온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음에도 외부의 지원 없이 오로지 스스로 그 비용을 감당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연말 루브르박물관 전시도 정부의 지원 없이 자비로 준비를 했다.
“사실 나는 아직 국내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것 같아요. 정부의 지원도 별로 없구요. 나는 외국의 학자들이 더 좋아해요. 대한민국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봐요. 일본을 보세요. 수백 년 전부터 문화유산으로서 불화의 가치를 인정해 훌륭하게 잘 관리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고려문화가 일본 그림이라는 얘기까지 나오죠.”
스님은 “일생을 걸고 그림을 그린 사실을 후회 않고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며 “고려불화가 이처럼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상을 탔다는 사실에 진짜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이 극도로 정교한 산업인 반도체 등에서 세계 일류가 된 것도 고려불화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함의 유전자가 면면히 우리 핏속에 흐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고독한 작업의 연속이었지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체득해 가며 알리는 일만큼 보람있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고려불화를 그리며 알리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터뷰 = 이경택 부장대우 (문화부)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