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3 계엄에 이은 탄핵, 그리고 관세 압박 등으로 나라가 내우외환을 겪는 상황이 되면서 이를 타개할 기업가정신이 절실한 요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책과 제도와 풍토가 변화와 도전과 혁신의 기업가정신을 견인하는 데 과연 적합한지, 나아가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기업인이 아니라도 과도한 규제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높은 물가·지가·임금을 추가로 꼽을 정도다. 반(反)기업 정서나 적대적 노사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임은 물론이다.
우선, 시행한 지 3년이 지난 중대재해처벌법을 살펴보자. 그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작업 안전과 근로자 보호의 본래 목적에 우선하여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CEO)를 처벌하는 데 더 중점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또, 근로자 등 기업 현장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의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는데 반도체특별법을 왜 그리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체 유예에 앞서 반도체 분야만이라도 풀어 보자는 데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제도적인 기업 활동 규제나 반기업 입법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상속세율과 상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등은 경제 단체들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밀어붙인다. 정책과 제도마다 고유한 정책 취지와 시행 의도, 그리고 엄밀한 효과 분석을 수반하는 것이기에 일률적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그러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충분히 만족시키는지 재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가 기존 이해관계자의 보호 장벽에 막혀 좌절한 사례로 ‘타다’와 ‘로톡(Lawtalk)’을 들 수 있다. 타다는 기사가 딸린 렌터카 사업이고, 로톡은 온라인상의 법률 플랫폼 사업이다. 그런데 각각 택시 업계와 변호사 단체의 반발과 정치권의 가세로 인해 시행도 못 한 채 막을 내렸다. 기득권자 보호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것만 중시한다면 새로운 기술 체제로 등장한 자동차를 포기하고 계속 마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통용되는 가치 체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빠르게 움직이고 혁신하라’(Move Fast, Break Things)라고 할 수 있다. 고민하다가 일단 결정되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고, 뭔가 깨부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하고 있는가? 아마도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사업 환경은 ‘느리게 움직이고 고수하라’(Move Slow, Preserve Things)에 가까운 게 아닐까.
기업가정신은 기존 기업은 물론 창업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요즈음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규 진입자의 창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혁신보다는 관리로 중점이 이동된 기존 사업을 재활성화하여 관리보다는 혁신이 우선시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가정신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국가 차원의 기업가정신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인들만의 노력으론 부족하다. 정부나 유관 단체의 기업가적 역할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가 하는 역할과 성과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인허가 받는 데 몇 달이 걸리고 기존 규칙에 어긋나서도 안 되는 우리 현실에서 기존 기업의 변화와 혁신, 창업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김용열 前 홍익대 교수·경영학